브레히트 B. Brecht/쉽게 쓴 브레히트

이해(오해)하기 어려운(쉬운) 브레히트 사랑 - III

그리스도의 편지 2014. 11. 24. 21:43





이해(오해)하기 어려운(쉬운) 브레히트 사랑
- 세 연인으로부터 세 아이 아빠된 26살박이 브레히트 사랑
 
 
 



브레히트와 "Bi"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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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중의 아기, 

브레히트 자식이 자라도록 둬라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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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총각과 숫처녀의 첫사랑



    브레히트의 다락방에서 단 둘이 언제나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좋았지만, 카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소녀 "Bi"에게는 큰 모험이기도 했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고, 그 당시의 고향 친구들 (대표적으로 후일 브레히트 공연은 물론 유명한 무대장치 미술가로 알려진 네어 Caspar Neher 등)과 모여서 브레히트가 자기 시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문학이나 예술에 관련된 토론을 했다. 브레히트가 글을 쓸 때는, "Bi"가 그냥 조용히 앉아서 작업하는 브레히트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브레히트의 창작을 고무하는 일이 된 것이다. 브레히트가 쓰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Bi"의 생각을 물어보고 토론하다 계속 작업하는 식이었다.
     이 당시 브레히트는 "Bi"와 틈나는 대로 작품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3막과 4막, 특별히 4막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막들을 계속 거듭해서 바꿔 쓰고 했는데, "Bi"가 곁에서 이 작품을 쓰는 일에 함께 토론하고 들어준 일에 대해 브레히트식의 방식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된다. 즉, 브레히트는 이 작품"을 "Bi"에게 헌정한다. 초판 인쇄 5천부에 "비 반홀쯔에게 1918 Der Bie Bahnholzer 1918"이란 말로 헌정하게 된다.

    이런 작가 브레히트의 창작 자세는 이미 "마리 A.에 대한 기억"이란 시에도 나타났지만, 후일 작품 창작에 도움을 주었거나 같이 공동 작업한 사람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함께 인쇄함으로써, "자기 혼자만의 창작물이 결코 아닌 주변 사람의 도움, 특히 함께 작업했던 공동작업자의 이름을 밝히고 그 수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기는" 작가의 기본적 양심을 읽을 수 있다. 초판 "한밤의 북소리"를 "Bi"에게 헌정한 것도 연인이어서 헌정했다기보다는, 이 작품이 완성되도록 옆에서 도왔던 "Bi"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정한 작가로서 브레히트의 기본 양심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브레히트의 이런 창작 자세가 후세 '선정적인" 문학가들에 의해 "브레히트가 공동작업자들의 능력을 착취했다"는 저작권 시비문제로 정열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런 쓸데없는 시비보다는 브레히트와 포이히터방어의 공동작업의 철학부터 먼저 이해하고자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포이히터방어와 브레히트가 1942년 10월부터 1943년 1월까지 미국 산타 모니카에서 "시몬느"를 함께 공동 작업한 뒤에, 브레히트는 희곡을, 포이히터방어는 1944년에 소설 "시몬느'를 출간했으며 두 사람 모두가 서로 상대의 이름을 공동작업자로 밝히고 있다. 소설이 할리우드에 영화 대본으로 그 당시 파격적인 가격인 5만 달러에 팔리자 브레히트와 아무런 조건 없이 반반씩 나눠가졌기 때문이다.

브레히트 다락방 책상에 있었던 해골을 양쪽에 낀 브레히트 (1917년) 


   어찌했건, 1918년부터 "Bi"와 이런 교제 과정 가운데 브레히트가 1919년 2월 13일에 완성한 희곡이 작가 브레히트를 독일에서 이름을 알리게 한 "스파르타쿠스"란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가지고 3월에 뮌헨 문단과 극장계를 이끌고 있던 포이히터방어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가 "한밤의 북소리 Trommeln in der Nacht"로 작품 이름을 바꾸도록 권했다. 이 작품으로 브레히트는 클라이스트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스파르타쿠스"의 창작열과 함께 브레히트는 "Bi"를 여인으로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 열정도 무르익어간다. 하지만, "Bi"에게 첫 키스 시도에서 완강하게 거부당한 브레히트는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린다. 물론 두 사람은 '한번쯤 온 밤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서로 가지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바람은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지만, 1918년 6월 하순이나 말쯤에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Bi"가 애완동물인 햄스터를 보러 시골에 이틀 정도 가려고 하자, 이 기회를 브레히트는 친구를 동원해서 아우크스부르크 역에서 "Bi"가 햄스터를 보러가는 기차가 아닌 "Bidi"를 만나러 가는 뮌헨행 열차를 타도록 한다.


    이 여행이 바로 두 젊은 남녀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뜻 깊은 여행이 된다. 이 여행에서 "Bi"에게는 처음으로 입술과 처녀성을 브레히트에게 허락했고, 둘은 마침내 깊이 사랑을 터치하는 관계로 발전되게 된다. 브레히트도 처음으로 여성을 체험하게 되고 이 여행을 기점으로 둘이서 온전하게 남성과 여성으로서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된다.
    뮌헨에 도착하자 마자, 기쁜 얼굴로 아우크스부르크 시골 처녀인 "Bi"에게 바이에른 수도인 뮌헨을 구석구석 안내하면서 함께 시내 구경을 한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도 모르게 밤이 되었고, "Bi"가 숙박할 호텔을 잡아야만 했다. 브레히트는 "Bi"를 역 근처 "라이히 아들러"란 호텔에 짐을 풀게 했다. 생전 처음으로 타도시에서 혼자 여행한 순진한 소녀 "Bi"가 호텔방에 홀로 자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브레히트는 바로 옆방을 하나 더 빌렸다. 하지만, "Bi"는 혼자서 자는 것이 무서워 견딜 수 없자 "Bidi"가 자기 방으로 와달라고 부탁한다.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지쳤기에 브레히트는 "Bi"에게 어서 잠자리에 들자고 제의했고, 흔히들 엉큼한 늑대들이 하듯이 브레히트도 역시 "Bi"에게 "단지 옆에만 누워 있고 싶다"고 강조했다. 얼마 안 있어 이내 브레히트는 관계를 시도했고 "Bi"는 당연히 거부했었다. 이런 "Bi"의 거부가 너무나도 완강했었기에, 브레히트는 "Bi"가 아직 완전히 성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즉시 알아챈 브레히트는 "지금 순간부터는 그녀와 성적 관계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고 "Bi"를 팔베개 하게 한 뒤에 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 한 가지 주제로 두 청춘남녀는 잠자는 것조차 잊은 채, 밤을 꼬박 세우게 된다. "Bi"는 후일 이 날 밤에 대해 "어린 처녀가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기지가 넘치는 방법으로 마침내 인간이 되는 비밀을 체험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런데, 두 청춘 남녀가 함께 같은 방에서 잠을 잤지만, 성적 관계는 물론 키스조차 하지 못한 채로 뮌헨의 유월 아침은 다시 밝았다. 아직 미성숙한 처녀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경험한 탓도 있지만, 낯선 도시에서 첫날밤을 꼬박 세웠기 때문에, "Bi"는 두통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시내로 나가 서로 마주보고 웃고 행복해 하는 "Bi"와 "Bidi"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연인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제한된 시간에 조금이라도 뮌헨을 더 보기를 원하는 "Bi"를 손에 잡고 시내 곳곳을 활보했었다. 뮌헨의 한 중심가인 마리아 기둥 아래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브레히트는 돌발적으로 "Bi"에게 지난 밤 호텔방에서도 참았던 첫 키스를 시도한 것이다. 온 사람들이 가는 발걸음을 멈춘 채로 이들 둘을 쳐다보았지만, 브레히트에게는 "거부당하지 않은 첫 키스", "Bi"에게는 "기꺼이 응하는 첫 키스"로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첫 키스의 경험을 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마리아 기둥 아래서 백주대낮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가 아닌 숫처녀 "Bi"의 입술을 훔치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뮌헨 시청 광장앞에 마리아 기둥


    "Bi"의 두통이 더 심해지자 호텔로 되돌아 왔고 "Bi"는 피로에 지쳐서, 브레히트가 한 방에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Bi"가 비몽사몽 하는 가운데 반쯤 잠이 들었을 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젊은 혈기의 브레히트는 귀엽게 잠든 이브, "Bi"를 덮쳤다.** 그런데, 아뿔싸 이 일을 어쩌나?! 브레히트 역시도 여자와의 동침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둘은 서툰 채로 하나가 되었으며 설잊은 대로 그렇게 행복한 아담과 이브가 된 것이다. 이때가 브레히트 나이 21살, "Bi"의 나이가 18살이었으며, 숫처녀와 숫총각은 이렇게 시련을 앞에 둔 달콤한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2014년 겨울 -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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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가 "Bi"에게 첫 키스한 시기는 그녀의 회고에 의하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였던것 같다.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그 당시 여느 여성들처럼 숫처녀로서 결혼해야 한다는 신념이었고, 브레히트가 시도하면 체력적으로 뒤진 브레히트에게서 늘 달아났었고, 그러다 뒤따라오는 브레히트를 기다려 주는 "Bi"에게 사귄지 2년반쯤 된 아주 오래 뒤에 첫키스했다고 한다. 그리고, 뮌헨에서 첫 관계도 "Bi"의 회고에 따르면 약간 다르다. 완강히 거부하는 그녀가 숫처녀임을 알고서 첫날은 어떤 신체적 접촉도 전혀 시도하지 않았고 아침까지 이론적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밤을 세운 "Bi"가 다음날 아침에 심한 두통이 있자 잠을 자게 하고 브레히트는 강의를 들으려 학교에 갔었다. 강의에서 되돌아와서 둘이 하나가 되었으며, 브레히트 역시 "Bi"와 처음으로 여성과 가진 관계였다고 한다. 물론, 21살의 작가 브레히트의 "Bi"와의 사랑은 "바알"에서 자기의 사랑에 대해 기술하는 요하네스와는 전혀 다른 면이다. 실제는 브레히트가 작가로서 '문학적 자아'인 요하네스로서 "Bi"와의 사랑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전혀 다른 얼굴인 것이다.


배경 음악은 Giovanni Marradi의 "Romantic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