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들도 모두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시 59, 16)
루터 번역본에는 시편 59편은 "적진영 한가운데서의 기도"란 제목이 달려 있다. 여호와 앞에 시편 59편에서 탄식으로 쏟아내게 되는 내용은 아주 간절한 것들이다. 시편기자는 생명을 위협받고 있으며, 원수들은 그를 멸하려고 한다. 원수들은 조금도 아량이 없으며 그들은 모든 속임수를 합당하게 여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시도록 도움을 간청하는데, 그는 다음 세가지의 간구를 하고 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딱한 처지를 보시고 나를 도우소서" (4절),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의 콧대를 꺾으소서" (11절) 그리고 "그들을 씨도 없이 소멸하소서!" (13절)이다. 과연 이렇게 기도해도 용납될 수 있을까? 그렇다! 왜냐하면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행하심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께 복수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가운데 자신의 생명이 구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기준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 예수님의 계명에 머물고 있다. 어찌했건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손에서 구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일은 허락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59편의 기도와 함께,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계명 중에서 다른 어떤 계명보다도 이 명령보다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철학자 니이체 F. Nietsche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요구가 '기독교를 약자와 비겁자의 종교로 만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광신적인 몽상가의 경건한 요구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 필연성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의 원수에 대한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고, 원수처럼 우리를 괴롭히며 갖은 선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복된 주일이 되시기를 .... 샬~~~롬
시 59 롬 9, 1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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