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주안에는 남자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 11, 11-12)
바울 사도는 여자가 공중예배에서 기도나 예언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여기서 토론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자도 성령의 은사에 대한 몫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예배드리는 일에 기꺼이 봉사해야 한다. 이런 일은 고대 사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자연스런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자유케하는 복음이 여성들에게 합당한 존엄성을 부여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여자와 남자로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둘다가 똑같은 지위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이다' (갈 3, 28) 하지만 남여의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그렇기 때문에 선동적으로 모든 규정들에서 탈피하는 일에 맞서는 입장을 취한다. 여자들이 머리에 쓴 것을 벗고 예배에 참석하는 고린도 교회처럼, 이것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하는 규정에 어긋난다. 물론 관습은 변하지만, 서로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습도 역시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는 이런 것을 통해 항상 새롭게 공동으로 꾸미는 과제를 가지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자유나 권리를 특별히 주장하는 사회나 모임일수록, 인간 창조의 화평함이 이미 금이 가고 있음을 봅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공존하여 화평한 상태,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태는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구분하지 않으며, 똑같이 공동으로 속한 가정,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아름다움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난 아름다운 것임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배경 찬송은 "그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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