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빌립보

너희 염려를 주께 다 맡겨라

그리스도의 편지 2009. 12. 26. 19:47




너희 염려를 주께 다 맡겨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  6)

  
 

  

     아무런 염려도 말라. 사도 바울은 천박한 처세술에 능통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면 순진하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든지 삶과 전혀 거리가 먼 낙관주의자란 말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은 원래 무엇이 걱정인지를 잘 알고 있다. 바울은 지금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 앞에 확고한 미래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형선고를 받을 지도 모른다.
    또한 빌립보 교회 때문에 바울은 염려할 수도 있으며 다른 교회 때문에는 더 걱정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바울은 낙관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그는 실리주의자이다. 바울은 '단순히 걱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반대이다. 염려는 심리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으며 괴롭힐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산상설교에서 "염려하지 말라!" (마 6, 25)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염려 속에서 자기 스스로 맴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염려하신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애태우는 일에  대한 양자택일이 "가볍게 생각해라!"가 아니고, 하나님께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을 "기도와 간구로 아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마음을 편히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자식때문에 밤샘을 하면서 간호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엄마된 사람은 당연하겠고, 아빠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신 아프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라 안절부절하면서, 아이 옆에서 몇날을 밤을 새우게 됩니다. 이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벧전 5, 7)는 말씀을 떠올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밤새워 걱정했지만,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를 위해 걱정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걱정을 하고 노력해도,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걱정 대신에 하나님을 향한 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염려 가운데 있는지요? 모두 다 주께 맡기는 하루가 되시길......  샬~~~롬



       빌 4, 1 - 7,   행 11,  1 - 18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469장 찬송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