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요한복음

필요하다면 따귀로써도

그리스도의 편지 2009. 8. 10. 19:38



 
필요하다면 따귀로써도 명확한 대답을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 6,  67)

 
 

    각종 정당, 자동차 생산업체, 텔레비젼 방송 등은 자신들의 최고의 목적이 우리들의 다양한 기대를 채우는 일에 달려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정당을 뽑으며 다른 자동차를 구입하고 다른 채널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교회만이 불편한 각종 진리들을 말할 자유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했건 우리가 교회 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압력을 양보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청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본훼퍼 Dietrich Bonhoeffer 목사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대와 바램을 성취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다"라고 했던 말이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어있는 직감력과 이를 위한 명확한 안목을 주신다. 이것을 통해 오늘 묵상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8절)라고 대답한 것처럼, 우리가 대답할 수 있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살다보면, 믿는 자체를 가지고 조롱하는 일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종종 믿는 우리들 앞에서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로 열변을 토하는 일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어떤 시골에 믿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며, 늘 아는 척하는 달변과 궤변에 능한 중년의 점잖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온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인 자리에서 믿는 사람을 곤란케 하고자, '하나님이 없다'는 수많은 궤변을 그럴 듯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하나님은 바로 이 자리에 천사나 심부름꾼을 보내어 나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지금 당장 따귀를 후려쳐 보시지요"라고 소리치면서 장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는 동네 교회의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물론, 장로님 그리고 여러 집사님과 권사님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꾸를 않고 있었습니다. 이때 연로하신 할머님 한 분이 앞으로 걸어 나가셔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 천사를 보내실 여유가 없으시지만, 내가 너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주마"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양쪽 빰따귀를 철썩철썩하고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모인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어!"하고 힘주어 선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은 명확하며, 할머님처럼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바깥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믿는 자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믿음 안에서 강건한 하루가 되시길 ....
~~~롬

 

요 6,  66 - 71,   요  19,  31 - 37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236장 찬송 "주 예수 크신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