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 119, 148)
하나님은 구약시대처럼 가까이에 계시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것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늘 거듭해서 의심한다. 언젠가부터는 하나님과 말씀을 떠날 결심도 하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시험 당하고 혼란을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친히 대답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며, 믿을 수 있기 위해 마침내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고 외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일, 당신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진리가 되는 일을 우리 스스로 성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당신의 말씀을 향해 열려 있을 수는 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소망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147-148 절)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선 당신을 부르고 외치는 인간들에게 반드시 응답하신다. 우리가 시험이나 의심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찾아오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결코 청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손 안에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확실케 하신다.
오늘 시편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믿는 그 자체를 박해하는 사회나 공산권 치하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아니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한 목사님이 들려주신 중국 지하교회 교인들에게 세례를 준 감격스런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지하교회 교인들은 희미하게나마 부모들에게 들은 성경 이야기와 믿음으로 몇 년 심지어 몇 십년을 세례받고자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집례자인 목사님은 낚시용 의자로 수십명이 앉은 한 가정집에서 세례식과 성찬식을 대하는 그들의 거룩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믿음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당연히 부모님을 통해 전해 받은 믿음인 것입니다. 먼저 믿는 부모된 자로서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끝없이 중보 기도해야 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맘으로 복된 주일을 보내시길 .... 샬~~~롬
시 119, 145 -152, 벧전 5, 5 - 11
배경 찬송은 "날마다 주의 인자하심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