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눈물 - 사랑으로 통하는 관문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 22, 42)
오늘 예수님은 솔직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 오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각종 두려움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처한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는 형제가 되어 주신다. 마태/마가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우리에게 더 노골적으로 눈 앞에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 26, 38 / 막 14, 34)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당신의 속마음을 통찰케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선채로 두손을 쳐들고 기도드리지도 못하시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신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 졸고 있는 세 제자
예수님은 아주 극심한 회의 속에서도 아직도 변함없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과 거의 씨름하는 가운데 기도를 드린다. 예수님은 "괴로워 몸부림 치시면서" (44절) 하나님께 "피눈물"로 애원하시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한 천사를 보내 힘을 북돋워 주신 것 이외는,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면서 이 잔에서 마지막 한모금까지도 다 들이마시도록 두셨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과 친구들로부터 배신 당했으며, 성난 파도처럼 외치는 군중들에게 내침을 받으셨고, 당신의 모든 품위를 송두리째 앗기는 뼈아픈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이것으로 예수님께서 충분히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아 음부 깊은 곳까지 쫓겨나시게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무나 두려워 하시던 "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잔을 예수님에게서 결코 옮기시지 않으셨다. 우리 인간 모두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들이키신다. 이 사실이 항상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 (판화)
오늘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겟세마네"에서 한번쯤, 아니 여러번을 하나님 앞에서 절규하며 울부짖게 됩니다. 이 눈물이 진정으로 예수님과 하나님 품안에서 흘리는 눈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아픔과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삶 가운데 하나님 임재와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처절하게 인생의 "겟세마네"에서 무릎을 꿇은 암담한 순간에 참회의 눈물로써 주님께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고통중에 주님에게 되돌아가는 관문을 제대로 찾게 되는 것임을 고백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던 고난 주간의 새벽이 열립니다. 이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닫는 복된 한 주간이 되시길 .... 샬~~~롬
눅 22, 39 - 46, 고전 2, 1 - 5
배경 찬송은 "내가 어디에 있던지"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