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내게 하는 맹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 4)
지난 죄과를 우리 삶에서 없이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엄청난 가치를 치루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남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과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또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한 아픔을 극복하고, 용서를 비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둘다 모두 포기를 의미한다. 용서를 비는 사람이나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모두 현 위치에서 한걸음을 물러서는 것이다. 하지만 용서를 통해 수십리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 미해결된 죄가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게 되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런 오랜 짐들이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억제된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시작이 마침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니가 내게 하는 맹큼 나도 니한테"란 원칙에 따라 살며 또 이 원칙으로 전혀 선한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런 원칙을 "그리스도가 내게 하신 것처럼, 나도 니한테"라고 바꾸면 어떠할까? 그리고 필요하다면, 매일 일곱번 씩이라도.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엄청난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 아래 두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으신 것이다.
오늘 묵상 텍스트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 34 - 35)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굳게 믿으면, 또 다른 얼굴,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눅 23, 34)라고 간구하시며 사랑과 용서를 가득 담으신 예수님의 얼굴을 기억하게 됩니다. 용서는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어내고 앞에 펼쳐질 삶에 대한 자유를 허락해 줍니다. 용서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17, 1 - 10, 눅 22, 49 - 53
배경 찬송은 김한준의 "용서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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