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원치 않았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 13, 34)
부모를 걱정시키는 자식은 대부분 부모가 애지중지하는 귀여운 자식이기도 하다. 바로 이 자식들이 끼치는 걱정들로 인해서 부모님들에게 특히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게되면, 부모님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게 된다. 하나님을 걱정시키는 자식과 하나님이 애지중지하시는 자식은 바로 예루살렘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애정과 엄격함으로써,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껴안았으며, 병아리처럼 그들을 날개 아래에 품으셨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이들 앞에 서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시도를 무산케할 위험에 있다.
이들이 하나님께 각종 아픔을 끼쳐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들이 하나님께서 애지중지하는 자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계속 문을 열어두시고 기다리신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애지중지하시는 자녀들에 속한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내가 너희를 불렀고 또 찾았지만, 너희들은 나를 원치 않았다"고 말씀하시지 않도록 우리는 전 삶을 통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너희는 저기 있는 모든 것을 믿느냐?"고 결코 질문하시지 않고, "너희는 나를 너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각종 교리의 총체로서가 아니라, 우리 믿음의 역사의 중심에서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삶의 안전지대'를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이 "안전지대"는 '우리가 누구였으며, 현재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알고있는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 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일 것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13, 31 - 35, 행 14, 8 - 18
배경 찬송은 채수련/임임택 곡의 "주께로 돌아오라"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