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누가복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일

그리스도의 편지 2008. 9. 8. 23:36

Candle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눅 13,  17)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한 여인을 고치신다. 그런데 '단지'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회당장은 아주 좋지 못한 일로 보았다. 일하는 날인 엿새 동안에 생긴 일이면 좋았겠지만, 안식일에는 좋지 않단 말인가?
    회당장과 같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머리를 흔드는 경향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식일에 모두가 자신들의 손해를 피하며, 동물들을 풀어서 물을 먹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람에게 선행을 회피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일을 위해 이들은 그럴 의사가 없다. 오히려 성급한 판단으로 몸을 도사리기만 한다. 종종 우리 자신이 이러한 사람들과 비교되지는 않는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써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런 일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회당장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이 잘못된 사고를 폭로하신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부끄러워했어야만 했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자신들의 잘못된 태도를 파악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도우실수 있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일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자기의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용서를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만은 못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는 일'은 회개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가는 문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 각처에서 특히 믿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이 너무나도 잦은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13,  10 - 17,   전  12,  1 - 8

 

배경 찬송은 김응래 곡/하명희 노래의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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