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마태복음

누구를 위해 봉사하며 뽐내나?

그리스도의 편지 2008. 7. 21. 23:49

Candle




그리스도의 뜻을 위하여?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 40)


    예수님의 면류관 앞에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 놀랍게도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분명한 척도가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의를 기울어야만 한다. 인자의 판단으로는 우리가 훌륭하고 고귀하거나, 아름다움과 부유함을 갈망하면서 보는 "위로 향한"시선이 우리 삶을 위해서 결정적인 것이 결코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뜻안에서 사는 삶은 "아래로" 살피며,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을 베푸는 사람의 삶인 것이다. 대개 이것은 지극히 사소한 작은 도움일 뿐이다. 한 줌의 쌀이나 한 조각 빵, 몇 푼의 동전이나 작아지거나 유행이 지나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가지 등이다. 하지만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결코 큰 대접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에게는 바로 이들이 결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한번도 이런 일을 행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실지' 하시면서 슬프게 질문하신다. 이러한 활발한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택함받은 것처럼 느껴도 된다.

    오늘 텍스트와 관련해서 한 예화를 떠올려 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다친 전쟁포로를 갖은 정성으로 보살핀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후일 전쟁이 끝나고 그녀에게 찾아와 진심으로 감사하는 그에게 "저에게 감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저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실망한 그 남자는 "참 애석하군요! 저는 당신이 저를 위해 그렇게 진심으로 간호해 주었다고 생각했었는데..."라고 대꾸했다는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와는 달리, 현대사회의 특징은 "내가 내지는 우리"를 잘 내세우며 잘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선한 일을 베풀고서도, 신문은 물론 곳곳에 광고를 내어 이 일을 내세우고 댓가와 주위의 칭찬과 감사를 되돌려 받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일에 그리스도인들과 믿음의 공동체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다른 이웃 안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인식하며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우리가 예수님께 거저 받은 것을 이웃의 입장에 서서 그냥 베푸는 일방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주위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복된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마 25,  31 - 46,  골  4, 29 - 6

배경 찬송은 "박기이"의 "주의 이름을 높이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