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창세기

먼저 이해하고 나서

그리스도의 편지 2008. 4. 3. 15:12





먼저 이해하고 나서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창 42,  7)


    이제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와서 엎드려 절한다. 이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 넘겼다. 요셉은 엄하게 비난하고 의심한다. 이 일이 누구를 놀라게 하는가? 요셉은 복수를 꾀하며 형들이 자신을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처럼, 그들을 감옥에 가둬버린다.
    하지만 요셉에게서 무엇인가 달라지게 된다. 요셉은 서서히 엄한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며, 오래 전에 꾸었던 자신의 꿈을 생각한다. 이 꿈이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요셉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인식했을까? 요셉은 실제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해야 할지에 대해 고심하고, 형들을 시험하여 그 사이에 변했는지를 알고자 하며 형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한다.

    당연히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의 첫 충동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엄한 소리로 말해야지!"는 생각, 과연 화해의 마음들이 관철될 수 있을런지 또는 요셉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기회를 줘야 하는지 등의 생각들이다. 왜냐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용서가 승리로 이끌기 때문이다.

    2002년 7월 1일에 호수라고 불리기엔 너무나도 큰 호수이며, 3개 나라의 국경이 되기도 하는 보덴제 Bodensee 상공에서 모스크바에서 오는 여객기와 바레인에서 오는 수송기가 충돌하는 큰 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고로 71 명의 어린 학생들이 생명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쮜리히 공항 관제탑에서는 항공 관제사 N씨가 혼자 일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관제사가 과실을 저지르며 오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2004년 2월 24일에 한 소련남자가 쮜리히 시내 관제사 N씨의 집 앞에서 N씨를 무자비하게 칼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 살인자는 불행한 비행기 충돌사고로 아들과 딸을 동시에 잃어버린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졸지에 사랑하는 두 자녀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분노와 원망을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곧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이 꼭 옳다고 볼 수 없음이 분명해 집니다. 용서는 잘못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과오나 잘못의 용서는 그 이후에 뒤따르게 되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용서함에는 이러한 과정과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억압과 복수에 앞서서 먼저 상대와 일의 상황을 이해하고 난 뒤에 베푸는 용서는 슬기롭고 유익한 또 하나의 가능성임을 고백하는 복된 새로운 하루를 맞습니다.   샬~~~롬



창 42,  1 - 28,   눅  23,  39 - 43

배경 찬송은 조만행의 "내 마음 담는 어디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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