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 108, 12)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늘 거듭해서 곤경에 빠졌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강점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능성들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좋은 종말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하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영적인 눈"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땅과 하늘에서 이루어지는지 (5절),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하나님 앞에서 전혀 가망이 없음을 (10절) 보고 있다 . 그런데, 실제 현실은 전혀 다르게 보이고 있지 않는가?! 이 의문 속으로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심판자로,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초청할 수 있다"는 구원의 생각이 들어오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의 외침을 듣고 계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지를 깨닫는 순간에, 우리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에, 우리는 각종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된다. 중요한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는 일" (14절)이다. 선하고 좋은 좌우명은 단지 어려운 시기만을 위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늘 정직하고자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한 젊은이가 직업 교육을 마치고, 나라에서 주는 군화 몇 켤레를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궁핍한 때에, 관청으로부터 "국가 재산인 신발을 되돌려 달라!"는 공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낡은 신발을 회수할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자기 신발이 아닌 사실에 분명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발을 기꺼이 반납했습니다. 그는 신발을 보내면서 "주여! 주님께서는 나에게 신발을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십니다"하고 간구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뜻밖의 소포를 받았는데, 열어보니 반환했던 신발이었습니다. 상자 안 작은 메모지에 "전 나라에서 신발을 돌려보낸 사람은 당신이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 혼자만이 보낸 신발을 보관하는 일이 관청으로서는 무의미한 일이기에, 당신에게 다시 되돌려 보냅니다"라고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크고 작은 이익이나 손해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을 잃지 않으며 새벽을 깨울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108 골 3, 12 - 17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오늘 이 아침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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