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 62, 5)
"하나님을 향해 잠잠하는 일"은 단순하게 평온한 공휴일의 안식, 일상의 소란함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시편 62편에서 박해받으며 뒤쫓기는 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다. 복수하고 방어를 하고 싶은 시험과 유혹이 아주 가까이 놓여있다. 그런데 루터 번역에서 5절은 "하지만"이란 단어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저기 하늘나라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그가 나의 원수들, 나를 없애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멸하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시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두려움 한 가운데서 잠잠함, 절망의 한가운데서 안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누구인지 아시며,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지 간파하고 계신다. 우리 스스로 권리를 얻고자 굳이 애쓸 필요가 없으며, 이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겨도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시편기자의 기도는 단지 하나님이 박해자들에게 맞대응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잠잠하게 화평을 되찾는 것이다. 어찌했거나 우리의 상황은 당장 변화되지 않는다. 그렇다! 상황 그 자체는 전혀 변화되는 것이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으로 기다리는 가운데서 같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이것을 통해 나쁜 상황은 결국 그 힘을 잃게 된다.
우리 인간의 삶은 자의적이든지 아니면 반강제적이든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정의 아니면 불의, 자유 아니면 속박, 명예 아니면 불명예, 심지어는 생명과 죽음을 선택해야 할 때도 직면하게 됩니다. 일본 대지진 이후, 최고의 안전을 자부해오던 일본 원자력 발전소 중에 하나인 후쿠시마 발전소의 속수무책한 사고수습 대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이제 인류를 위해 "생명과 죽음"을 선택해야 할 기점에 서 있습니다. 그 동안 인류는 원자력이 몰고 올 위험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면서, 마치 "원자력이 인류의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외치던 헛된 믿음을 마침내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는 원자력에 기대를 걸거나 그것으로 비지니스를 도모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어리석은 인간아! 잠잠히 나만 바라라. 무릇 너희 소망이 나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세밀하게 권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평화와 복지에 대한 사고전환을 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62 고전 13, 1 - 13
배경 찬송은 '주님의 사람들'의 "주는 나의 반석되시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