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신명기

국가백년대계란 기준

그리스도의 편지 2010. 2. 25. 00:59




"국가백년대계"란 기준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신 17,  19)

 

  

    고대 이스라엘 왕들은 무언가 좀 아주 특별난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들 왕들도 자주 이렇지 못했으며, 다른 권력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많았고 오만한 폭군과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집트나 앗시리아 제국의 신격화된 왕들과는 아주 달라야만 했었다.
    특별하게 뛰어난 출신이나 중동의 부유 계층이 아니라, 눈에 드러나지 않는 특권이 이들 왕들을 특징지어야만 했다. 즉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삶속에서 영향을 끼치고 매일 정치적 다스림 속에서 이 말씀들에 좌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왕들처럼 우리 자신들도 똑같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 왕들처럼 우리 자신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없을까? 매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도 중에 찾을 수 있으며, 매일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발견할 수도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 지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올림픽 경기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테네에서 1896년에 처음으로 열렸던 근대 올림픽 경기에서 마라톤 거리는 40 킬로미터였습니다. 그런데 1908년 런던 경기에서 이 거리가 갑자기 42,195 킬로미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라톤이 윈저궁에서 출발해서 새로 건축된 올림픽 경기장 안에 있는 왕의 특별 관람석 앞이 골인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에더워드왕 7세가 출발과 결승을 제일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지만, 아주 이상하고도 우스꽝스런 42,195 킬로미터라는 기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권력자들은 기꺼이 자기 자신을 위해 축제를 벌이며, 자기가 모든 사물의 기준을 기꺼이 정하고자 합니다. 이 가운데서 권력자들은 정작 기준을 잃어버리고 그 자신들 위에 군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자신들 아래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백성들을 위한 마음도 당연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대표적 인물을 바로 우리 가까이에서 찾는다면, '국민의 큰머슴으로 봉사하겠다'는 다짐으로 취임했지만, "국가백년대계"를 앞세워 법으로 이미 정해진 내용조차도 "수정안으로 무시할 수도 있다"는 기준을 가진 이명박 장로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산다면,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왕과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권력자들이 정확한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17, 14 - 20   13,  31 - 35    


 
 

배경 찬송은 최용덕 시/곡의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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