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고린도 전

다섯 마디

그리스도의 편지 2010. 2. 20. 00:40




깨달은 마음으로 말하는 다섯마디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 19)

 

  

    진심으로 하나님을 깨닫게 되어 우리의 혀가 무력하게 되어버릴 그런 일이 있을까? 모든 의심을 다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이 가까이 임재하는 사실에 대해 말할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일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방언과 같은 소위 성령강림절의 영적 체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된다. 하지만 방언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으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항상 반복되는 논쟁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바울은 이것보다 좀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다. 바울에게서는 영적인 은사에 관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 간에 내부적인 논쟁은 그리 문제삼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공동체가 되지 말하야 한다는 사실과 믿는 중에 이성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점을 바울은 훨씬 더 중요시 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기독교적 믿음, 예수님의 사역과 그가 완성하신 구원의 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기 스스로 경건해지기 위해 자기 도취에 빠질 것이 아니라, 깨달은 이성을 가지고 '다섯 마디의 말'을 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로써 자기 스스로가 이해함은 물론이고, 남을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진정 '깨달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다섯마디 말'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수난에 관한 영화나 그림들을 보아왔는지요? 그런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하시면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는 완전히 깨달아 믿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좀더 깊이 깨닫는 주간이 되시길.....  샬~~~롬

        

        고전 14, 13-25,   사 43, 8-13

  

배경 찬송은  "그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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