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 9, 1)
1절에서 12절까지 말씀에서 16개의 질문, 이것은 아주 큰 긴장감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있다. 왜일까? 다른 사도들은 이리저리 여행하며 교회에서 가르치며, 이 교회에서 자기들의 생활비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천막 만드는 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했었다. 이로 인해 바울의 적들은 '만약 바울이 저렇게 처신을 한다면, 아마도 진짜 사도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질문은 '도대체 바울이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악소문 때문에 바울은 몹시 흥분했었다.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다마스커스에서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다.
바울은 편협한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에 마땅히 화났었다. 그렇다, 모든 일꾼들은 자신들에 품삯을 요구할 만하다. 하지만 바울은 '명예직으로' 또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종종 돈을 위한 봉사는 복음을 위해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피하고 막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사울 바울을 통해 역사하시며 복음을 증거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자기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거짓 사도라는 비난을 받는 바울 사도를 보면서, 교회 안에서 매번 일어나는 돈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복음의 전파를 위해 믿는 사람으로서 값없이 받은 우리의 조그마한 은사들이 복음 증거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고백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교회 안에 단지 샬~~~롬만이 있겠지요?
배경 찬송은 "사랑하게 하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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