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요한일

형제자매와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스도의 편지 2009. 11. 4. 01:17




형제자매와 이웃을 사랑하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요일 3,  17)
  
 

  

     요한일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이웃사랑이 같이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을 쓸데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에 대해서는 알고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놀랍게도 "그리스도인이 이웃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아주 큰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늘 거듭해서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우리가 남에게 이웃사랑을 강력히 요구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살 수는 있다. 이웃사랑은 단지 감정, 생각과 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몸소 개입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약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감사하고 나누라'는 부에 대한 의미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 충분하게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사 58, 10)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이웃사랑"을 외치면서 열심히 실천하지만, 여전히 공동체 안의 문제에 열중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늘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노라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여, 공동체의 각 기관이나 조직이 공룡처럼 비대해져서 자체 경비 충당에 여념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비대해지는 공동체일수록 상대적으로 이웃사랑의 맘이 오그라들게 되고 공동체 안팎의 주린 자와 괴로와 하는 자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게 됩니다. 결국에는 세상 눈으로 보기에도 모범되지 못하는 모습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공동체가 스스로 은혜스럽다고 주장할지라도, 결국 비복음적, 비성경적 나아가서 비신앙적인 모습이 되고 말 것입니다. 늘 밖으로 향하고 열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일 3,  11 - 18,  고전 4,  9 - 16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369장 찬송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