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요한복음

길고 긴 토요일

그리스도의 편지 2009. 10. 16. 23:49



 
길고 긴 토요일을 사는
신약시대 사람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  39)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이 순간에는 부활 아침에 대한 아무런 예시도 없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희망은 랍비인 예수님과 함께 사라진 것이며, 유대민족 전통에 따라 장사지내고자 했다. 안식일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 정성을 다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과 정성을 다해 상처 투성이의 시체를 다루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났다. 또한 지난 날의 모든 의문과 두려움도 잊어버렸다. 무덤이야말로 확고부동한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흔들어 바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제자들은 이제 단지 예수님을 위해 최후의 것만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에 속했던 니고네모 자신도 예수님을 너무나 존경했기 때문에, 아주 많은 량의 향료를 내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를 향료와 세마포로 싸서, 큰 돌을 굴러 무덤을 막고 장례를 치뤘던 것이다.

 

   예수님께 어떤 것을 가져가서, 내어 놓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들이 얼마나 속수무책인가!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금요일과 무덤에 장사 지낸 토요일 이외에도 우리는 새로운 시작인 일요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날은 부활, 공의와 죽음을 극복한 사랑에 대해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절 일요일의 모습은 장차 다가올 먼 미래의 희망과 소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수난 금요일과 부활절 아침 사이에 놓인 토요일과도 같이, 예수님이 곧 오시겠다고 한 신약시대는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하는 아주 긴 운명적인 '토요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길고 긴 '토요일'의 끝이 희망찬 새 아침인 부활절의 아침과 같다는 희망 중에 즐거워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롬

 

요 19,  31 - 42,  호 5, 15 - 6, 3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341장 찬송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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