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시 35, 10)
시편 35편의 기자처럼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우심을 위해 감사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원하고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시편기자가 이렇게까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편기자는 엉뚱하게 죄를 뒤집어 쓴 일들과 각종 공격들로 탄식하고 있다. 우리는 시편기자가 '나와 다투는 자가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스스로 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시편 기자가 원하는 내용이 자기 적대자의 멸망이 아니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도움을 위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라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게 된다. 그는 하나님을 영원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으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어 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멀리 방치하여 밀쳐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천진난만하게 기도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모든 세계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돌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하고 기도해야만 한다.
성경에서 나쁜 일을 도모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징벌하기 위해 기도하는 시편을 소위 "복수의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이런 일을 자행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서도 안되며,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 속에서 피의 흔적을 보게되면, 상당히 경건한 척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35편은 위에서 경건하게만 보지 않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시편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종종 아주 냉혹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씀 뒤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일상 중에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대강절 4번째 촛불이 켜짐과 함께 이제 곧 오실 임마누엘 예수를 희망 중에 기다리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35, 1 - 18, 벧전 1, 13 - 21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104장 찬송 "곧 오소서 임마누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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