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두려움이 있고 거기에 덧붙여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오늘 묵상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기분이었는지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 속에는 받쳐주는 들보 하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약 시대에 제자들은 전문 수상구조대도 물론 아니었으며, 물이라는 요소에 단순히 겁을 낼 뿐이었다.
우리에게 바다는 깊이와 때로는 바닥도 없는 신비 속에서 삶의 상징으로 보인다. 게다가 풍랑이 밀어 닥치면, 바다는 더욱 더 거칠게 보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8, 25)라고 외치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물 위로 제자들의 배로 걸어오신 것처럼 우리에게로 다가 오신다.
심연과 깊고 깊음을 건너 예수님은 배 가까이로 오신다. 우리 영혼의 심연을 건너 예수님은 우리에게로 다가오신다. 죄와 소외의 심연이 예수님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아마도 물 속에는 받쳐주는 들보가 분명 있을 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적어도 "십자가 들보"를 물 속 깊은 심연 위로 놓아 두신 것임에 틀림없다.
아주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여러분은 누구를 부르시는지요? 제자들은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하고 외치는 것을 오늘 보게 됩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낙심하거나 인간의 부질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이것을 해결하고자 함을 고백합니다.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주님의 도움과 임재가 긴급할 때가 자주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이 천사의 환도뼈를 잡고 밤새 씨름하듯이, 우리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고 밤새워 기도하며 주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11월이 시작됩니다. 연말을 앞두고 급박한 상황에 있는지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쳐, 주님 안에서 해결함을 받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6, 16 - 21 빌 3, 12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