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 4)
권력은 깊은 인상을 준다. 고난과 실패보다는 우상들과 함께 강함과 성공을 연관시킨다. 이들의 대리자들에 의해 능수능란한 등장과 표현에 있어서 확실한 사고의 유연성을 기대한다. 바울 사도는 전혀 다르다. 바울은 고린도의 반대자들을 "위대하다는 사도"라고 부른다. 이들은 유창하면서도 항상 미칠 영향을 의식하여 "권력과 성공의 예수"를 전파한다. 바울은 그들의 능숙함도 언변술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누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알아보았는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모든 것이 결정나게 된다. 다른 사도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성공을 과시하는 동안, 바울은 통상적인 기준에 따르면 실패했지만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생명으로 부활하신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한다.
이것은 모든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일까? 바울은 "분명 이것은 진리에 대한 요구이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실패를 통해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이외에 "다른 예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와서 다른 예수를 전파할 때,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거짓 사도를 조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칭 "황금의 혀", "은혜의 폭탄"등의 거창한 자기자신의 찬사를 붙여가면서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한 수많은 "거짓 목자"들이 도처에서 신화를 낳고 있습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순한 양들에게 "다른 예수"를 전하며 세상적 명예와 재산을 추구하는 거짓 목자, 사이비 목자들에게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진리를 멀리하고 "다른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연약한 마음에 그 책임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 9)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도록 소망하는 복된 새로운 한주가 되시길 .... 샬~~~롬
고후 11, 1 - 6, 마 27, 62 - 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