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고린도후서

각양의 무기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 2009. 7. 2. 23:41



 
각양의 무기보다 설득력이 있는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고후 10, 4)

 
 

     이런 싸움이 실제로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각종 갈등들이 팽배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 적개심을 가진 그룹이나 그리고 각 개인들 사이에 화평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것은 단체, 나라와 민족 사이에 있는 긴장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필이면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싸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명예, 권력이나 허영심을 위해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육신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막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싸우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 그 때문에 우리는 죄악의 노예생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의 나태하고 고집 센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마귀의 교활한 각종 시험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증오의 대상인 이방인으로 머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복음을 위해 분투해야만 한다. 이것은 이 세상의 무기와 관련된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불신앙을 극복해 주셨던 오로지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만이 오늘날 꽉 닫히고 차단된 인간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 보면,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육신에 속하는 무기와 권력'으로 이 세상과 대적하여 승리하고자 했던 피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흔히들 외부에서 위협이 닥쳐오면,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칼과 무기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기의 사용과 전쟁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찾고 있습니다. 공권력을 동원한 정치적 폭력과 공안정치로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공포정치주의자들은 조용히 감내하는 국민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을 약자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무저항으로 박해를 당하는 이런 그리스도인과 인권주의자들이 "육신의 무기"를 들고서 악의 세력에 맞서지 않도록 우리 각자는 중보기도로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힘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으며, 이것이 각양의 무기와 무력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음을 확신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후  10,  1 - 11,   전  3,  16 - 22  

 

 

배경 찬송은 "믿음으로 승리하리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