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욥기

동병상련할지니

그리스도의 편지 2009. 4. 4. 23:25

Candle




이성적 풀이보다 동병상련할지니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욥 11, 14-15)

 

 


     욥의 친구인 소발이 어떻게 욥이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즉 욥이 죄 짓는 것을 중단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소바는 소위 '너가 잘 되면 너가 선한 일을 한 것이고, 너가 고통을 당하면 너가 죄를 저질렀다'는 '보복 신앙' 내지는 '응답 신앙'을 믿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욥이 고난을 받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응답 신앙은 의를 유지하는 기반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신앙은 아무런 영속성이 없다. 왜냐하면 욥기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들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 42, 7)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욥의 이야기는 얼마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가? 인간들은 세상에 괴로워하고 또한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들을 괴롭히는 하나님의 자세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어떻게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토록 고통을 당하겠끔 허락하실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견더내기 위해 각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할 때까지, 멀고도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 중에나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안에서 겪은 긍정적인 경험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 우리 신앙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믿음으로 변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더 강건해질 수 있을 것이다.

 

   중병을 앓거나 큰 슬픔에 빠진 사람을 만나 시편 말씀이나 예수님의 고난 이야기로 위로하고자는 것이 적합치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묵묵히 말없이 이들 가까이에 있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통을 실제로 당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웃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며 돕는 소위 "동병상련"의 마음입니다. 그 이후에 서로 신앙적인 말들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욥 11, 1-20,    출 18,  13 -27                                                         

 

배경 찬송은 김응래/하명희의 "주님을 닮아라"입니다. 
 
 

'되새김질편지 > 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안목으로 새 삶을  (0) 2009.04.05
희망의 지붕 아래 안식하는 자  (0) 2009.04.05
누가 우리를 ...  (0) 2009.04.04
피난처시요 도움이신 하나님  (0) 2009.04.04
주께로 향하는 길을 ...  (0) 200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