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군중들에게 설교를 한다. 하지만 바울이 말을 마친 후에 소동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도 자녀들을 모은다는 바울의 말이 청중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되고 만다. 하지만 로마 천부장은 어찌할 줄을 모른다. 어쩔수 없이 그는 바울을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지시하게 된다. 군중들의 압력은 그가 불의를 하도록 움직였던 것이다.
정치에서 얼마나 자주 한개인의 권리보다 만족하는 유권자의 다수를 더 인정하고 있을까? 하지만 바울은 모든 것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바울은 신문을 지시받은 백부장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이 주장이 효력을 발휘해 바울로 인해서 그들은 두려워하게 된다.
불법에 대항해서는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정당한 법이 다스려지는 곳에서는 우리가 불법에 대항해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무조건 통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고문하는 종이나 폭력자가 이렇게 빨리 듣던지 안듣던지는 항상 우리 손에 달려있는게 아니다. 어찌했거나 오늘날도 여전히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의로운 일인가?"라고 항상 묻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이다.
바울 사도의 말에 군중들은 두드러지게 강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간단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부가 첫 아이를 얻게되면, 갖은 사랑을 다하여 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이 아이는 사랑을 독차지하여 즐기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런데 몇년 후에 동생이 태어나게 됩니다. 갑자기 사랑을 나눠야 하는 아이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만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실제로 하나님의 "첫째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일 이십년도 아닌,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고 2000 여년간을 그렇게 "첫째 아이"였던 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서 갑자기 이방 그리스도에게도 똑같은 상속권을 준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반응한 것이 오늘 묵상에 나오는 군중들의 반응인 것입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속은 너무나도 풍족해서 모든 사람에게 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모두에게 상속권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행 22, 22 - 30, 야 2, 14-26
배경 찬송은 "그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