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이사야

우리를 사용하소서

그리스도의 편지 2008. 10. 7. 23:45

Candle




주님 사랑이 필요한 그 곳에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  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대신에 제물을 취하신다. 이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제물과 생명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생명을 걸고서 이야기하며 고백하는 것들을 전부 실천에 옮기는 것일까? 아니면 요구와 실제가 또한 아주 동떨어진 것일까?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눈길 속에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다. 성경을 이해하고 보는 눈길은 우리가 실제 어떠한 존재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의 외모는 아직도 좀더 변화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선행을 배워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부를 변화시켜야 한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원래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간단한 요구에도 우리는 늘 반복해 실패하고 오만에 빠지게 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 즉 고독한 자, 가난한 자, 실망에 빠진 자가 있는 곳에 바로 선행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러한 고통을 보고, 이런 사람들을 품을 때에 우리의 참된 사랑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로이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시도록'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스레트 지붕에 허술한 마루바닥으로 지어진 시골교회 모습을 연상해 봅니다. 바쁜 농사일을 멈추고 예배에 참석하는 형제자매들은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땀에 절은 모습들입니다. 자매님들은 예외없이 작은 어린이들과 젖먹이까지 데리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가까이 앉은 한 자매님은 세 어린 자녀를 곁에 앉혀두고 품에는 젖먹이를 안은 채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자매님이 기도에 집중할 때, 눈물이 빰으로 끝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때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젖먹이에게 젖을 먹어야 하는 필요성과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싶은 갈급함으로 어찌할 지를 몰라 안절부절해 합니다. 이 때 아름다운 일이 순식간에 교회 안에서 벌어집니다. 곁에서 기도하던 한 자매님이 이것을 눈치채고는 조용히 다가가서 갓난 아기를 품에 안고서 자신의 젖을 물렸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갈급한 자매는 계속 기도할 수 있었고 속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보다 풍부한 물질과 좋은 시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이 다양한 현재의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서로의 갈급함을 위해 이와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해 봅니다. 갈급한 형제자매를 위해 선행을 몸소 실천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사 1,  10 - 20,  벧전 1,  13 - 21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우리는 주님의 자녀되었으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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