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눅 20, 25)
기독교적인 믿음 중에서 예를 들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내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등 단지 한 문장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진리가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진리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여러 생각들이 필요한 믿음이나 인생의 여러 주제도 있기 마련이다. 신앙적인 인생설계에 대한 질문이나 특별히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곤궁에 빠뜨리고자 질문하기를 즐기는 사람과 정반대로 보신다. 이들은 단지 "예"나 "아니요"로만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을 예수님께 질문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단지 종파와 교리에 매인 사람만이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명확하지만, 구분하여 답하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오늘날도 "국가에 세금을 내고, 헌금은 하나님께"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이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국가와 정부를 위해 당연히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정부를 인정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 권력을 존중하지만, 하나님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복종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대답하신 이후, 교회는 끝없이 이와 같은 질문 앞에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는 박해당했고, 또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의 길을 택해야 했습니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확고한 믿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국가 권력 앞에 맞설 우리 자신의 강건함을 위해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곧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이요 외침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일부 한국 기독교회가 박해가 아니라 각종 세상의 혜택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좋지못한 수많은 세상적 수단을 동원해 스스로 재물에 눈이 멀고 부를 축척하다 마침내는 총체적으로 함께 죄악에 빠지는 일을 접하고 할말을 잃게 됩니다. "가이사 것은 내 주머니, 하나님 것은 아들 주머니"란 범죄가 그럴 수도 있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몸된 교회 안에서 두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믿음을 고백하면서 독수리 날아 오르듯이 우리의 믿음이 치솟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20, 20 - 26, 마 10, 34- 39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515장 찬송 "뜻없이 무릎 꿇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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