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품으라 - 관용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눅 9, 55 - 56)
예수님은 이제 고향땅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다. 이 길이 고난의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신다. 이 사실 대해 제자들에게도 이미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사마리아 땅을 지나 가신다. 그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돌아서 가실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과 제자들이 저녁에 문전박대를 당하게 될 사실에 전적으로 도전하신다. 제자들은 '갈멜산에서 예언자 엘리야에게서처럼 (왕상 18, 19 -40),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야 될 것이다'고 할 정도로 아주 과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의 길은 다르다. 너희들이 내 곁에 머무르고자 원한다면, 내가 가는 길을 따라야만 한다"는 말씀으로 심하게 꾸짖으신다.
이웃은 물론이고 심지어 믿는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거부하게 되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떤 일에 우리 자신이 상처받는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게 되는가? 세상의 다른 길과 예수님의 길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예수님께 내어 맡기고 우리는 잠잠히 "주여! 우리로 주님 곁에 머물게 하시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하게 되는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보이신 태도를 "관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을 수용하시고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관용"은 "무관심"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랑"에 그 바탕을 두어야만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행동하는 것에 아무 것도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관용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항상 관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관용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단지 비판하기 위한 눈길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 찬 눈길로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가운데 처해 있을 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를 공격해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잠시 잘못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우리의 사랑을 통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친구"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에 바탕을 둔 넓은 아량과 관용으로써 주위 이웃들과 화평케되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 .... 샬~~~롬
눅 9, 51 - 56, 요 8, 21 - 30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507장 찬송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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