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책임지는 그리스도인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 29)
바로 몇구절 앞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다뤄지고 있었다. 이제 예수님은 변화산에 계신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과 긴밀하게 교통하시는 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아들 예수를 인정하신다. 오늘날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복음서에서 연결되게 된다. 그런데 고난을 받고 죽게 될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변화산 상에서 예수님께서는 몇몇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적인 존재를 밝히신다. 성경은 이것을 "변화"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설명되어지는 "뚜렷하고 명료함"은 성탄절 이야기를 기억나게 하고 있다. 즉 그곳에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공동번역, 눅 2, 9)고 말해지고 있다. "뚜렷한 영광의 빛"은 신성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 가운데서는 이 빛은 다르게 투영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창 4, 6)라고 질문하신다. 사람의 안색이 변하는 이런 어두움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결과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거리를 유지하는 곳은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반면에 인간이 하나님 가까이 거하게 되면 밝게 변하게 마련이다.
흔히 '불혹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 말은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 속에 모든 것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말을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바꿔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중보 기도에 전념하는 생활이라면, 당연히 그 얼굴이 화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대로 품어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습니다. 기도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 기도가 항상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9, 28- 36, 눅 5, 33 - 39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259장 찬송 "빛의 사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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