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마태복음

이래(저래)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그리스도의 편지 2008. 7. 16. 00:04

   Candle




이래(저래)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예수님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마 22,  46)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바리새인들은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연이어 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했거나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어떤 의심스러운 것을 찾아내고 그들의 선입견을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그들이 소위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성경에 기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오늘 텍스트는 이제 예수님께서 그들을 궁지에 모는 질문을 하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으로 예수님은 그들을 곤란하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꼭 해야할 근원적인 질문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한다.

    질문은 실제 "예수님 스스로가 누구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예수님은 누군가?"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진정한 질문, 참된 의심, 진짜 궁핍함을 기꺼이 친절하게 대답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언제든지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대답을 알고 계신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각종 억척과 공론은 거부하시는 것이다.

    괴테 Goethe의 희곡 "파우스트 Faust"에 파우스트와 그레텐 사이의 대화 중에 유명한 질문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 말해봐! 너가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우스트 1부, 3415)란 질문입니다. 이렇게 그레텐은 파우스트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들 대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와 신앙심 저 뒤편으로 주된 관점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레텐의 질문은 원래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했던 내용입니다. 즉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더 구체적으로 "너희 자신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스도가 너희 삶에 주인인가?"란 질문일 것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마 22,  34 - 46,   행  6,  1 - 7

배경 찬송은 "박진희"의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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