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마태복음

배신적 속성을 가진 동전

그리스도의 편지 2008. 7. 15. 00:03

   Candle




배신적 속성을 가진 동전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  21)


    바리새인들은 속임수로써 예수님을 정치적인 궁지에 빠뜨리고자 한다. 거짓말은 이미 그 자체가 거만을 떠는 수작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이 바리새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가지는 태도에 따르는 전적으로 어려운 질문이 아님을  충분히 알고 계신다.
    바리새인들의 계산은 '예수님이 세금을 인정하면 민족의 배신자가 되며, 세금을 부정하면 반국가적 인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순종에 대한 문제이다. 즉, 우리 역시 '누구에게 속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는지'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치 로마 황제가 물질적인 것, 하나님께서 영적인 것을 각각 담당하는 것처럼 본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은 물론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행했던 행하지 않았던 간에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언젠가 한번은 해명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도 바로 설 수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젠가 한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또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데나리온 양면 테두리에는 "숭배할 만한 하나님의 숭배할 만한 아들, 티베리우스 황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권력과 우상적인 숭배의 상징이 둘다 티베리우스 황제 제위시의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권력의 상징이요 다른 한편으로 우상적 숭배의 상징이 아니라, 양면 모두가 한 황제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을 통해 데나리온이 바로 '정치의 종교적인 미화를 위한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데나리온이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 세상적인 권력의 신격화와 지배자의 숭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행히도 더 이상 이런 문구가 새겨진 데나리온 같은 동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맡기고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삶을 위해 필요성은 있지만, 우리가 맡기고 의지할 것이 되지 못하는 금전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복된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마 22,  15 - 22,   딤전  1,  1 - 11

배경 찬송은 "예수전도단"의 "이와 같은 때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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