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잠언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그리스도의 편지 2008. 6. 16. 01:11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7,  9)


 

     오늘 본문 텍스트처럼, 분명 그렇게 우리는 서로서로 잘 지내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허물을 사랑의 외투로 덮어놓지를 못한다. 또한 모든 악한 일들을 완전한 침묵으로 늘 일관할 수도 없다. 비록 이 일로 친한 친구를 잃게 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오래 전에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늘 거듭 되새김질하는 유명한 멍청이 노릇을 하는 일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어쩌다 한번 잘못한 사람에게 이것으로 인해서 평생동안 되씹을 수 있겠는가? 부모가 자식을 평생동안 결코 용서하지 않거나 자식들이 부모에게 영원히 화내는 일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일을 위해 우리가 숨을 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일을 위해 "마술적인 주문"이 있다. 이 주문이 바로 용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거던 , 일곱번 뿐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 (마 18, 22)고 권면하신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이 분명히 그리 쉽지만 않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이와 똑같이 행하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들이 한없이 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매일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은 자신이 늘 선하지만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 자신 스스로도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에게 단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자신의 안목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얻는 기쁨과 용기는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죄에 대해서 이김이요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주위에 용서해야 할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복된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잠 17,  1 - 17,        14,  7 - 14  

 

배경 찬송은 김한준의 "용서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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