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마태복음

섣부른 빠른 맹세

그리스도의 편지 2008. 6. 1. 00:20



섣부른 빠른 맹세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 5,  37)


    확실한 긍정과 분명한 부정은 만족할만한 대답일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람에게 각종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자신의 의도를 다른 수많은 말로 부가적으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한 자신들의 말의 보증과 증거를 위해 하나님 이름을 부를 필요도 없다. 이럴 때 맹세가 필요없는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법정 앞에서 진술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현실 속에서 다른 경험들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속한 것을 믿는다 할지라도, 애석하게 이것이 항상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기꺼이 변명하기도 하거나, 때로는 진리를 아주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긍정이 다시 긍정으로 유효하며, 부정이 다시 부정으로 유효하게 될 것이다. 명확함과 신뢰성 가운데서 말씀이 다시 회복되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미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대해 어느정도 드러내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섣부른 빠른 맹세에 대해 경고하시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30% 이상이 "성경이 진리이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면, 우리가 "성경에 이렇게 쓰여져 있어"라고 주장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독백이든, 대화이든, 논쟁이든 또는 끊임없이 혼자 지껄이는 소리든지 간에 서로 주고 받는 수많은 말들은 단지 허공 속으로 공허하게 소용돌이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가 더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논쟁하며 외치는 수많은 소리조차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는 전혀 저항할 수 없이 하나님의 명백한 진리 안에 서게 됩니다. 이런 명백하고 꾸임없는 진리를 날마다 말씀 안에서 추구하며, 이런 진리 안에서 참자유를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마 5, 33 - 37,     출  14,  15 - 22

배경 찬송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