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말라기

나만의 특별한 은혜란 없다

그리스도의 편지 2008. 5. 23. 00:50





나만의 특별한 은혜란 없다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 3,  18)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관찰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지말라는 모든 것을 골라서 하며, 뻔뻔스럽게도 다른 사람을 공공연히 괴롭히고 짓밟으면서도 남들보다 더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그 때문에 벌을 받았는지 질문해 본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도대체 의를 행하며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쓰라린 질문이 신구약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의인과 악인이 똑같은 취급을 당한다면, 정의감이 송두리째로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메세지는 우리에게 내적으로 만족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곧 바로 또한 불쾌감이 엄습해 온다. "아무런 구분없이" 우리가 죄인이며 은혜로 의롭다함을 입지 않았던가? (롬 3, 23 -24)  심판과 은혜의 수수께끼를 뚫고 지나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흑백논리의 단순한 평가도 포괄적인 은혜란 말의 섬세한 희미한 빛도 이 수수께끼를 결코 풀 수는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실 것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또한 오늘 본문 텍스트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의 놀람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의와 불의 사이에 차이를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라고 소망해야만 한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그리스도인을 특별히 박해한 독재자들의 말로를 뉴스에서 종종 접하게 됩니다. 말년에 실권에서 추락하여 긴 망명생활 끝에 이국땅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한 인간의 마지막을 보게 됩니다. 무신론자들이 이 죽은 자의 관을 운구하며, 관위를 잠깐 스치는 카메라 렌즈에 비취는 십자가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을 위한 마지막 심볼로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상이며, 바로 '마지막 심판자요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모든 인간 위에 계시다'는 심오한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차이를 무시하시지 않으시며, 불의하게 피해를 입은 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불의로, 악은 악으로 그리고 고통은 고통이라고 궁극적으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결코 하나될 수는 없지만,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주님의 은혜와 공의를 찬양하는 복된 새로운 하루를 열어젖히게 됩니다.  샬~~~롬



말  3, 13 - 18    롬  15,  8 - 13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347장 찬송 "내 맘에 주여 소망되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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