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창세기

죽을 자가 죽는 것도 ...

그리스도의 편지 2008. 5. 2. 05:06




여호와 은혜의 표적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 3,  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잇따라 부르고, 이 세상에서 복수가 최후의 수단이 되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 가인은 죽을 짓을 한 것으로치면 천백번한 것이다. 친동생을 살인한 가인은 친가족에게 끝없는 고통을 더했다. 인간의 한 모델로서의 가인은 하나님을 배신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을 창조했는지  이사람은 잊었단 말인가? 어떻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경고하며 그를 부르는지 이 사람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단지 마지막에 자신을 살인자로 만드는 증오심만이 자신을 사로잡도록 내맡긴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아주 비참하리만큼 사실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각종 관계의 파멸을 묘사하고 있다. 단지 우리 자신만 홀로 내버려졌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계속 살아서 당신 품안에서 본향을 찾기를 원하신다. 가인의 표적은 우리로 하여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겔 18, 32)는 말씀을 기억케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증오심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될 것입니다. 형제와 이웃의 관계는 물론이며 가문, 지역, 국가와 민족 간에 응어리진 증오심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화해할 수 있어야  마침내 우리는 주님의 참 사랑, 주님의 긍휼 아래에 머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 마음에 진실된 사랑을 허락하시며 서로 간에 화해할 능력과 마음을 허락하심으로 가능케 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죽을 자가 죽는 것도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 은혜의 표"로서 복된 하루를 열어젖히게 되시길 ....  샬~~~롬



창 4,  1 - 16,  눅 12,  49 - 53

배경 찬송은 정진숙 시/장욱조 곡의 "내가 어디에 있든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