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B. Brecht/문학과 문화

국내 출판사가 '브레히트'로 '찌라시'가 되는 지름길

그리스도의 편지 2014. 12. 14. 00:30





국내 출판사가 '브레히트'로 '찌라시'가 되는 지름길
- “아티초크"의 "브레히트 시선"과 관련된 글들을 통해 본
 
 
 


소위 서평이라 함은

독자들에게 무엇보다도 독서의 충동을

문학 이론가들에게 연구의 욕구를

비평가들에게 비평의 칼날을,

그리고 저자에게는

보다 알찬 내용을 주문하는 데 있다.

또, 아무런 욕구도 없는 자들에게는 

최소한의 눈요기라도 줄 때

그 역할을 다한다.


(KMJ,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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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대학시절에는 독일 문학사에서 브레히트 이름을 접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들은 독일 문화원 도서관의 원서들을 통해서 겨우 접할 수 있던 '어두운' 시대가 있었다. 독일로 유학와서 작가 브레히트를 전공으로 택하고 학업에 열중하고 논문을 쓰며 배우고 있을 시기에, 1987년 "한마당 출판사"가 서둘러 브레히트 작품들을 번역해서 국내 독자들에 소개했었다. 그 이후로 독일에서는 브레히트 10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전집도 나왔고, 한국에서는 브레히트 연구가 활발해져서, 국내에 브레히트 학회가 생겼고 정기적으로 "브레히트와 현대 연극"이란 제목으로 논문집과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필자는 1988년부터 브레히트 신,구 전집을 전산화하고 브레히트 컴퓨터 인덱스 2000 (BCI2000)이란 이름으로 브레히트 관련 내용을 손쉽게 화면에서 찾아보도록 인덱스화하고 브레히트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새전집 30권 (GBA)


     올 가을에 국내 신생 출판사가 한국 독자들에게 이미 소개된 것과 아직 소개되지 않은 시들을 번역해서 "브레히트 시선"이란 참신한 책을 독자에게 선물했다. 이 출판사가 바로 "아티초크"출판사 (이하 아티초크)이다. 출판은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신선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인쇄를 통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는 일이다. 최근 국내에 "책은 문화 상품"이라는 참신한 기획으로 종이 출판사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서도, "아티초크"는 "독서가 가장 문명화된 오락이며, 책은 우리 삶의 멋지고 지혜로운 친구라는 비전"을 공유하고자 출발한 신생 출판사이다. 전통적인 책과 저널, 그리고 상큼한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책을 멀리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책을 "3 사이즈, 3 디자인"으로 출판하고 있다. 책 디자인도 뉴욕에서 독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중요시해 꽤 비용을 들이고 출판을 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


   서두에 이 출판사의 좋은 점을 굳이 소개하는 것은, 브레히트와 관련된 내용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브레히트 내용과 관련되어 브레히트 전공자로서 이 출판사에게 "가혹할 정도의 심한 비판"을 가하기 위함이다. 지난 가을부터 블로그에다 국내에 일반 독자들을 위해 "쉽게 쓴 브레히트"란 글을 쓰면서, 다음이나 네이버는 물론 SNS상에 올라오는 브레히트 관련 다른 글들을 접하게 되었다. 유독 많이 올라오는 내용이 대부분 시 제목과 관련된 내용인지라, 젊은 대학생들이 열심히 블로그 활동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엄마를 사랑해: 아틸라 요제프, 윤동주, 브레히트, 에드거 앨런 포우"를 클릭하여 브레히트 관련 내용을 보고 난 뒤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출판사가 그 근원지였다.


    그래서 다음날, "아티초크"의 글과 관련하여 "브레히트 시 - 나의 어머니에 대한 노래"란 글을 블로그에다 올리고, "아티초크" 편집인 앞으로 '필자 글의 링크를 읽어보고 수정을 하라"는 메일을 정중하게 보냈다. "아티초크" 출판팀장이 즉시 "꼼꼼하게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업로드 한 실수"라고 정중하게 사과했고 "출간한 '브레히트 시선집'을 독일로 보내주겠다"는 친절과 함께 답신을 보내왔다. 물론 흔히 출판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실수로 알았다. 하지만, 서재에 소장하고 있는 책의 절반이 브레히트 관련된 책인지라, "보낼 책에 대해 일일이 오류를 지적하고 블로그에 올릴지도 모르는데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보내라"고 답신을 보냈다.
    필자의 답신을 통해서, "아티초크"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브레히트 전공자, 그것도 자신들이 야심을 가지고 내놓은 "브레히트 시선집"과 관련된 내용에 수많은 오류를 지적당할 문제와 마주친 것이다. "책을 보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답신을 보내왔었다. 그 뒤에도 "브레히트 시 전공자를 소개해 드릴 터이니 이미 출판된 책과 출판 될 책에 대해 다시 한번 전반적으로 체크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 이후로 "아티초크"는 필자의 보낸 메일을 읽기는 하지만, 노코멘트인 상태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_표지A
아티초크의 "브레히트 시선" 표지


    늘 글을 써온 사람이라, 오타나 흔히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에는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다. 하지만, 사실과 어긋나거나 잘못된 내용을 과장해서 주장하고 선전까지 일삼는 내용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시간을 내어, "아티초크"에서 "브레히트 시선집"과 관련해서 온라인 상에 이미 공개한 몇몇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 결과,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브레히트"란 작가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전혀 확인되지 않은 글들을 온라인이나 SNS상에서 무책임하게 광고목적으로 쏟아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티초크"가 무책임하게 쏟아내고 있는 내용들은 출판사 영리 목적으로는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상품의 주체인 작가 브레히트와 관련된 내용은 실제로 사실과 부합되는 내용들 만큼이나 사실과 다르거나 작위로 만들어낸 거짓 내용들을 짧은 문장에서도 몇 개씩이나 발견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사실 확인을 통해, "아티초크"는 독자를 향해 멋대로 선전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장할 근거를 결국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티초크'가 소비자인 독자를 이런 내용으로 '기만 내지 사실이 아닌 거짓을 믿도록 강요'하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내부와 외부의 수많은 검증, 교정과 편집 과정들을 통해 자체 검증을 한 뒤에 인쇄해야 하는 출판물임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이면 이미 출판물로서는 상품 가치와 신용도를 출판사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미국 뉴욕 디자인, 라이프 스타일"로 세련되게 포장한 불량품에 가까운 셈이다. 그 이유는 브레히트란 작가에 대한 수많은 오류를 정작 출판사가 오류인지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과대포장하여 국내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아티초크"의 번역시 자체를 본 적도 없고 번역은 저작권을 가진 번역자의 몫이기 때문에, 번역한 시 내용 자체는 논외로 한다. "아티초크"는 김광규 시인의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비교해서, "상당한 의역의 결과물로 시적 정취를 물씬 풍기는 맛이 있어요. 두 시집 각각이 특징과 장점이 있습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두 시 제목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구글 번역기에다 독어를 넣으면 그 정도의 번역은 해주기 때문에 "아티초크"의 주장은 전공자들에게 쓴 웃음을 짓게 한다.



"김광규 선생님이 번역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독어 원제는 각각 <Schlechte Zeit für Lyrik> <Ich, der Überlebende>이고요, 공진호 번역가는 <시에는 좋지 않은 시대> <나, 생존자>로 원어에 충실하게 옮겼습니다. 김 선생님의 번역은 상당한 의역의 결과물로 시적 정취를 물씬 풍기는 맛이 있어요. 두 시집 각각이 특징과 장점이 있습니다."



   역자가 시의 제목을 '어떻게 시의 내용에 가깝게 번역하는가'는 김광규 시인은 물론, 공진호 번역가의 몫에 속한다. 하지만, 번역된 제목의 적합성과 시 내용에 자체는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번역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작가의 시를 광범위하게 이해했고 그 내용을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느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김광규 시인과 이승진 교수가 번역한 "후손들에게"란 제목을 "후세대들에게 An die Nachgeborenen" (GBA 12, 85 ff.)라고 굳이 바꿔 올리는지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번역 작업은 제목에서 내용을 해당 언어에 맞게 '적확'해야하는 아주 엄격한 작업이다.

    하지만, "아티초크"가 예로 든 두 개의 시 제목을 '공진호 번역가가 시 제목을 바꿨다고 해서 원어에 충실해서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는 번역된 시 전체를 확인해서 평가해 보기 전에는 확인할 길이 실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구글의 번역 "I, 생존자"를 "나, 생존자"로 바꾸고, 독어 원어에 충실해 번역했다고 포장하고 있지 않는지 되묻고 싶은 의구심이 남는다. 말이 나온 김에 "아티초크"가 온라인에 공개한 번역과, 독어 원문, 김광규 시인의 번역, 구글 번역과 비교해서 한번 비교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Ich, der Überlebende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GBA  12, 125)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김광규, 한마당, 117쪽)



i, 생존자


물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 행운으로
나는 많은 친구를 살아했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오늘 밤
난 내이 친구는 말 했는가 "적자 생존"
그리고 나 자신을 싫어. (구글 번역기)



    그리고, "아티초크"의 해당시 번역은 다음과 같다.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봐도, 위에 제시한 독어 원전과 다른 3개의 번역들은 정확도에 관계없이 '어떤  번역이 문제가 있는지' 쉽게 비교가 된다. "아티초크" 출판사가 "시의 제목"과 관련해서 독자에게 주장하는 것처럼, 기존 다른 번역 시보다 과연 독어 원본에 충실해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구글 번역기가 제시하는 일부 용어, 그것도 좋은 "한국말"를 두고 굳이 "한자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시 내용에 대해서는 가능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본 글에서는 브레히트 역사적 사실인 브레히트 생애 자체와 관련되고, "아티초크"가 브레히트 학회까지 있는 한국에서 브레히트 전공자들에게 단 한 번의 심사만을 받았어도, 피할 수 있는 오류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티초크"는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작가 브레히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 개혁가였다. 그는 소년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의학 공부를 버리고 창작과 연극의 길을 택했다. 1933년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자 독일을 떠나 14년이라는 긴 망명길에 올랐다. 1941년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아 반미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서지만 혐의를 벗고 스위스로 갔다. 브레히트는 1949년 동독을 종착지로 선택하고 동베를린에서 극단 베를린 앙상블을 창설했다. 브레히트는 극작가이기에 앞서 탁월한 시인이었다.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나 1956년 동베를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대표적 시집으로 «가정 설교집»(1927) «스펜보 시집»(1939) «부코 엘레지»(1953)가 있다."


위의 간단한 작가 소개에서 4-5개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1) 브레히트는 의학 공부를 하다가 위생병으로 군복무로 마친 것이 결코 아니다. 브레히트는 원래 1917년 4월 20일에 전쟁 보조원으로 입대했어야 했었다. 자진 신고하는 학생은 전쟁 아비투어 시험을 미리 볼 수 있어서, 같은 해 6월 19일에서 23일까지 4일 만에 쉬운 아비투어 시험을 보고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고향에서 전쟁 봉사자로 나무를 옮기고 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10월 2일 뮌헨 의대에 등록하여 학업을 시작함으로써 군에 징집되지 않는 방편으로 의대를 다니게 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등록하고 공부하는 척했다. 6학기를 마치고, 1921년 11월 29일 자퇴하고 전격적으로 글 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물론, 이때 이미 주목받는 작가로 변신했다. 사실과 다른 뻥이야!!


2) 14년이라는 망명길 - "아티초크"는 14년이라 했다가 20여년이라 했다가 멋대로 브레히트의 망명생활을 줄였다 늘였다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1933년 2월 28일 독일을 떠나,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1948년 10월 22일 드레스덴을 통해 동독에 최종적으로 입국하기 까지 15년 8개월이다. 물론, 쮜리히에서 머물고 있던 브레히트는 중간에 베를린 앙상블을 얻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티초크의 특기인 숫자놀음이다!!


3) 1941년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 미국에 망명 중인 독일 작가들이 이 일을 전쟁이 끝난 뒤에 당하게 된다. 브레히트가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블라디브스톡에서 스웨덴 상선을 타고 마닐라를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망명을 위해 도착한 것은 1941년 7월 21일이다. 이 당시 미국의 주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히틀러', '뭇솔리니' 그리고 '히로히토'였었다. 히틀러에게 국적을 박탈당해 무국적자였던 브레히트가 1947년 3월부터 귀국 준비를 했고, 3월 27일에 미국에서 마음대로 출입국할 허가를 받았다. 출국 준비를 하던 1947년 9월 19일에 워싱턴으로부터 심문에 출석하라는 초청을 받았고, 10월 26일 청문회에 참석을 위해 워싱턴에 가서 파리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1947년 워싱턴 조사 위원회에서 심문을 받은 다음날 미국을 완전히 떠난다. 임의의 년도를 맘대로 발견하여 역사를 쓴다!!


4) 브레히트가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동독으로 거주할 목적으로 최종적으로 입국한 것은 1948년 10월 22일이다. 그러므로 1949년이 아니라, 1948년이 맞다. 초등학생 수준의 오류다!


5) 브레히트는 탁월한 극작가, 시인 뿐만 아니라, 58년만 산 브레히트가 90살 넘게 산 괴테에 못지않게, 시, 소설, 드라마, 이론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집필을 했었다. 그래서 브레히트를 '20세기의 독일의 괴테"라 부르는 것이다. 시선집에 강조하다보니 작가를 반쪽만 소개한 내용


6) 스벤보르 Svendborg는 브레히트가 덴마크에서 살면서, 스테핀의 공동작업으로 중요한 수많은 작품을 완성했던 지명이다. 특별한 의미도 아니고 국내에서 이미 표기된 지명을 아무런 설명이나 원어 표기 없이 "스펜보"라고 지명을 달리 표기하면 결국 다른 시집이 되고 만다. 이런 점은 "아티초크"가 년도를 멋대로 곳곳에서 바꾸는 것과 같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단 말처럼, "상주"와 "성주"는 분명 다른 도시니 말이다 . 새로운 브레히트 시집 추가!!


    "브레히트 시선"을 내면서 작가 소개를 하는 8 문장에서 위에 나열한 중요한 내용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오류는 심지어 "아티초크' 대부분 글들에서 매 문장마다 쉽게 확인되는 오류들이다. 오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티초크"는 자신들이 작성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수많은 거짓을 꾸며내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는 "아티초크"가 번역시를 소개하는 출판사 홈페이지의 다음의 글에서다.




‹가엾은 B.B.에 관하여›는 브레히트가 아우크스부르크라는 소년기 세계에서 대도시라는 현실 세계로의 이주를 앞두고 자신을 정글 같은 아스팔트 대도시의 주민으로 상상하며 쓴 시이다. 1921년 겨울, 그는 친절하지 않은 대도시 뮌헨에서 돈도 없고 배고픈 경험을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간열차에서 이 시를 썼다. 20대 초의 이러한 아픈 경험은 브레히트가 1920년대 말 맑스주의로 전향하게 된 주된 동기가 되었다.



    우선 위에 글에서는 시제목 "가엾은 B.B에 관하여", 1921년,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간 열차, 맔스주의 전향 등의 단어를 나열했지만, 100% 거짓 문장이다. "아티초크" 출판사에 이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주장에 꿰맞추기 위해, 두 가지 시와 관련된 내용을 과감하게 짜깁기를 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개하는 시에 대한 지식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브레히트 전집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전집을 한번만 뒤적여 확인해 보았어도 이런 100% 거짓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불쌍한 B.B.에 대해 Von armen B.B." (GBA 11, 119 f.)란 시는 브레히트가 정확하게 원고에다 "1922년 4월 26일, 밤 열차에서"라고 날짜와 쓴 장소를 적어두고 있다. 바로 이날은 브레히트가 두번째 베를린 여행에서 돌아와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린쯔 근처 피흐링 Pichling이란 도시에 있는 마리안네 조프 Mariannne Zoff의 집으로 가는 밤 10시 반 기차를 탔던 날이다. 

    "아티초크"가 책 제목으로 내 건 "마리 A.에 대한 기억 Erinnerung an die Marie A." (GBA 11, 92 f.)이란 시도 1920년 2월 20일 베를린행 야간열차에 쓴 시이다. "아티초크"가 말하는 시와 연대, 야간 열차는 전부 자신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에다 멋대로 짜집기한,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체 발견한 연대, 내용과 시 제목"인 셈이다.

    그리고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단 50여 쪽도 채 읽지 못한 "브레히트가 맑스주의로 전향" 운운하는 말도 그야말로 논지가 비약된 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브레히트가 석가에 대한 시를 쓴 것으로 '브레히트가 불교 신자로 개종했다" 할 수 없듯이, 그의 작품에 수용한 "사회주의"에 대한 내용도 다른 동양 사상들과 같은 내용일 뿐이다. 브레히트의 종교는 개신교였고 작품관은 휴머니즘이었다.



    "아티초크"의 "선정성"과 "찌라시" 성격의 주장이 최고 절정에 달하면서, 스스로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하는" 찌라시와 같은 주장은 물론, 독자들에게 사실 아닌 것을 100%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수많은 거짓으로 자폭하는 내용은 바로 사진까지 동원한 마가레티 스테핀 Margarete Steffin과 관련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 싶다"는 글이다.

    "아티초크"가 소개한 시는 원래 희곡 "사천의 착한 사람"에 나오는 센테의 운문체 대사이다. 물론, 이것은 브레히트 신전집, 시부분에 함께 편집 (GBA 14, 452)이 되었고, 브레히트가 '이것이 시로 독립해 출판'될 수 있도록 따로 분리해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아티초크"는 이것을 마치 "브레히트가 스테핀에게 헌정한 시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한국 독자들에게 스테핀과 연결시켜 아주 외설적으로 과장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로써, 서두에 소개한 출판사 "아티초크"의 비전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스스로 오류와 거짓의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결국 '독자와 작가를 공히 존중하는 양서를 출판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출판사이기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셈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사천의 착한 사람" 5장 끝부분에 슈푸씨, 센테와 그녀의 애인, 직장없는 비행사 양순과의 대화 부분에 5장 끝에 등장하는 관객을 향해 말하는 센테의 대사이다.


순: 여기서 고함지르지 말고 저 사람에게 말해.
센테: 사촌 오빠를 부르지 마세요, 슈푸씨. 오빠는 저와 의견이 조금 달라요. 나도 그것을 알아요. 하지만, 오빠는 옳지 않아요, 저는 그걸 느껴요. (관객에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다.
나는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 계산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이 좋은지 곰곰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다.

순: 바로 그거야.
(둘이서 퇴장한다.) (GBA 6, 231)



    운문체 대사를 통해서 슈푸씨에게 양순이 "우리는 연인 사이란 말이요. 알겠지요?"하는 앞의 대사를 센테가 "양순을 택한 자신의 결정"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센테의 이 대사를 가지고, "아티초크"는 다음과 같이 독자들에게 비천하게 찌라시로 스스로 추락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마리 A.의 기억》​중 간명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사랑의 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 싶다>입니다. 생전에 브레히트는 꽤 많은 여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끄고, 다시 불을 지르고, 끄고, 또 불 지르고 . . . 를 반복했는데요, 그 가운데 마가레테 슈테핀는 단연 '브레히트의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부인 아닙니다.)



    이제까지 위에서 기술한 실제 사실과 동떨어져 지극히 무책임한 '찌라시' 성격의 글들을 자랑하는 "아티초크"에 브레히트 전공자로서, 독자로서 새로운 비전에 걸맞게 반성하도록 다음과 같이 '뒤집기"해서 되돌려 주고 싶다.



오늘 올리는 글은 "국내 출판사가 '브레히트'로 '찌라시'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출판사 "아티초크"에서 온라인과 SNS 상의 독자들에게 갖은 오류와 거짓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나는 기꺼이 비난 받는 '찌라시'와 함께 가고 싶다"입니다. 창사 1년 만에 온라인과 인쇄물로 꽤 많은 독자들에게 '오류'를 퍼뜨리고 지우고, 다시 '오류'를 퍼뜨리고, 지우고.... 또 '오류'를 퍼뜨리고...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브레히트 시선"과 관련된 글은 단연 "아티초크의 오류"입니다. (주의: '브레히트 생애'에 대한 사실과 거리가 먼, "아티초크"가 자의적으로 만든 "찌라시" 입니다.) 



    출판은 독자들에게 '진실된 내용의 전달은 물론이고, 어떤 독자가 읽어봐도 믿을만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그 사실의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성공한 출판은 결국 책의 내용과 질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으로 영리를 추구하기를 바란다면, 그 작가의 생애에 대한 거짓 사실로 영리의 수단을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아티초크"가 "브레히트의 시선"으로 영리를 추구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죽은 브레히트는 물론, 수많은 작품을 공동작업했던 스테핀을 명예적으로 모독함으로써, 출판사가 최소한 지켜야 할 작가에 대한 예의와 기본 양심마저 저버리고 있다. 브레히트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면, "아티초크"가 출판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에 대한 내용에 더 사족을 달 필요가 과연 있을까? 이 모든 '너무나 경박한 오류들'에도 불구하고, 브레히트 전공자로서, 큰 비전을 가진 "아티초크"에 분기탱천을 바라마지 않는다. (2014년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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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된 '아티초크'의 글들 직접 캡처해서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이 온라인에 이미 유포된 글의 원본을 제대로 알고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 임을 밝힌다.

 

배경 음악은 Tom Barabas의 "Sonata in G Min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