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 7)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조언자는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은 영혼의 치유자로 여겨졌었다. 예수님이 선포했던 진리들은 '특별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위해' 항상 구체적이었다. 이것은 산상수훈으로 시작되는 "여덟 가지의 복"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 설교는 결코 "훈계"가 아니며, "단정하게 살아라"고 권면하지도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영혼의 치유자로서 예수님은 풍요와 건강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결코 부족하게 여기시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복된 사람은 단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긍휼"을 정의하는 것은 결코 예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긍휼히 여길 수 있는지에 대해 문자화하는 일은 요구하는 바가 더 많고, 또 수준이 더 높은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여호와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사람들 앞에서도 "긍휼히 여김을 받기"를 스스로 포기한 뻔뻔하고 악한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스스로 이웃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면서도, 세상적인 각양의 복들을 누리고자 탐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를들어, 자신의 범죄는 그냥 "실수한 것이다", "유감이다", "억울하다" 등의 상투적인 변명은 물론이고, 마지못해 한번 정도 사과하고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으로 얻게 되는 권력으로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이웃을 법의 잣대로 다스리겠다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더욱더 슬픈 일은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이것을 강건너 불보듯이 그냥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웃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풍성하고 복된 마음을 간구하며 아울러 스스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샬~~~롬
마 5, 1 - 12 느 9, 1 - 36
배경 찬송은 "긍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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