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요 19, 11)
그 당시 유대 땅에서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사건을 자신의 권력의 위치에서 해결하고자 했었으며,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게 되셨다. 공공연한 반란 사건은 이것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다른 권력을 만나게 된다. 빌라도는 스스로 사건의 주인으로서 느끼지만, 예수님은 다른 권력에 복종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전적으로 집중하신다. 예수님은 바로 아무런 권력없이 온전히 사랑으로 우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주고자 하신다. 이 일에 빌라도의 판결도 물론 한 몫을 하게된다. 예수님의 수난사건은 권력과 무기력 사이의 딜레마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권능을 만나게 된다. 이 권능은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 안으로 깊숙히 들어오고자 한다. 우리는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항상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늘 그 곳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감화시킬 수 있으시면, 이것은 또한 스스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실마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 실제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임을 고백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우리 인생의 실마리를 잡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에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존재를 깨닫게 될 때, 마침내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기꺼이 따라가게 됩니다. 위로부터 은밀하게 연출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깨달아 알며,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요 19, 1 - 16 고전 11, 23 - 26
배경 찬송은 "사랑하는 자녀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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