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요한복음

한반도 평화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편지 2010. 5. 20. 00:00

Candle




한반도 평화의 항구를 바라보며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  27)

 

  

    최고로 많이 오용된 의미들 속에 "평화"나 "평안"이라는 단어가 아마도 속하게 될 것이다.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 14)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평화와 평강은 불안, 불신과 보복이 뒤따른다. 그런데 예수님은 색다른 평화와 평안을 베푸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인간들에게 내어놓으시고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은 깊은 평안을 끼치신다. 우리에게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시험이나 문제를 가지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반대로 예수님을 위해 결정하고 난 뒤에 대부분 이것은 처음으로 제대로 시작되는 것이다.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 Shalom"이며, 하나님 가운데서의 완전한 보호의 상태를 의미한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이 십자가상에서 참된 화평에 도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평안과 화평을 확신에 차서 계속 전해도 될 것이다.


    독일에 오래 사는 한국 사람들은 자주 독일인들로부터 "한국도 언젠가는 독일처럼 평화적인 통일이 될 것이다"는 위로의 말을 듣게 됩니다. 조국 강산에 굳게 닫히고 적대관계의 상징이었던 철조망이 열리고 마침내 자동차와 기차가 오가며 일반 관광객들도 금강산을 구경하고 개성에 공장이 들어서서 공산품이 생산되는 평화적 발전과정을 통해 남북한도 이제 평화를 위해 도약하고 있음을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평화"란 단어에다 조건과 장식을 달아 오용하거나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거의 과거 냉전시대로 되돌아 가고 있는 현상이 지금 조국강산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가 깨어지는 원인을 지적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보수 내지는 기독교인임을 앞세워 권력을 잡거나 권좌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말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 5)에서 "우리"란 단어 대신에 "본인 자신의 이름"을 넣고서 큰 소리로 한번 낭독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며, 진정한 평화의 항구에 마침내 남북이 다함께 도달하게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세상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참 평화와 참평안을 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14, 27 - 31    15, 9 - 17

  

배경 찬송은 기현수의 "그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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