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요한복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

그리스도의 편지 2010. 3. 23. 00:16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  5)

 

  

    오늘 본문의 이런 상황 자체가 절망적이지 않는가? 손발이 마비된 한 사람이 38 년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번이라도 우연한 일이 생기거나 치유 효과가 있다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가 그를 데려다 주었다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건강하게 될 수도 있었다.
    구원이 그 만큼 가까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눈 앞에서 단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었지만, 그만 홀로 남아서 아무런 주의도 끌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었을 뿐이다.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하며 늘 반복해서 질문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도움을 주실 예수님이 그의 앞으로 오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이 움직이게 되면 앉은뱅이가 다시 움직이도록 연못가로 빨리 데려가는 대신에, 그에게 "네가 낫고 싶으냐?"고 질문하신다.

 

    왜 이렇게 예수님은 질문하셨을까? 우리 자신에게 이 질문을 "나는 무엇을 실제로 원하는가?"라고 항상 새롭게 다시 던져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물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치유하시며 우리 삶을 올바르게 인도하신다. 우리는 괴로운 문제를 가지고 도대체 어디로 찾아 가는가? 우리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마비시키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예수님은 우리를 생동하도록 움직이실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이웃들의 도움없이 단순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하며 각종 실망스런 일들로 마비되고 불신으로 인해 꽁꽁 결박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에게로 다가오시어 "네가 낫고 싶으냐? 네가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시며 말을 거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합니다. 이 질문에 우리가 "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가 예수님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선하고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참생명과 참진리를 위해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믿고 고백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5, 1 - 9  16,  23 - 34


 
 

배경 찬송은 신형원 시/곡의 "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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