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시 13, 6)
오늘 본문은 주일 아침을 맞는 우리에게 아주 선한 말씀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 시편 속에 시선은 기쁨에 앞서 깊은 절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때에 자신의 삶을 걱정하며 절망하여 쾌유케 되고 여호와께서 눈길주시기를 동경하는 중병앓는 한 사람이 간구하며 기도한다. 그는 "얼마나 더 오래동안?"하고 늘 거듭하여 묻는다. 이 궁핍한 상황이 얼마다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은 긴 자동차 여행,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기다려야 할 때 그리고 아픈 시간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얼마나 더?"하고 자주 질문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의 질문에 늘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얼마나 더?"란 질문을 자주 던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려운 질문은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반면에, 간단한 질문은 거의 시간이 답하기 때문이다.
시편 13편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참을성 없이 늘 거듭해서 "얼마나 더 오래?"라고 묻는 일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우시며, 그것도 기꺼이 도우신다. 간구와 호소로 하나님께 귀찮을만큼 조르는 일도 좋은 일이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이에 심령이 기뻐 찬양한다.
복잡하고 바쁘기만 현대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거의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편 13편의 기자가 드린 간절한 기도처럼, "여호와께서 나를 후하게 축복하셨으니 내가 그를 찬양하리라"는 감사도 똑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간절한 기도로 노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전세계의 지지를 받으며, 통일을 위한 노력과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보수 내지는 기독교 세력에서 그 기도의 응답을 소위 이념의 갈등의 제물로 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 노력의 시작이자 중심에 서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통해 온 국민과 국제적인 조의사절단이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며 그 분의 뜻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소 간구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에 진실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13 요일 4, 17 - 21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418장 찬송 "하나님 사랑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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