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0, 16)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위기에 빠졌다. 문제는 "소속이 스스로 그리스도 공동체인가?"하는 것이었고, 이것으로 성찬식 참예와 우상숭배 의식에 참여와 연관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단지 양자택일의 원칙, 즉 계속적인 결과들과 함께 근본적인 결정 밖에는 없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명백하게 다른 해결책을 합당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대부분 그리스 사람들에게 우상숭배 의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단순한 형식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법과 풍습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일 뿐이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우상 숭배를 멀리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순교에 이르기까지 장차 야기될 갈등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울 사도가 옳았다. 기독교 믿음의 문제를 우상숭배와 결합하거나 관련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부 거부하는 결론이 되고만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에게 우상들과 우리의 사랑을 나누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미 예언자들에게 강력히 반대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악이 여기서 생겨났던 것이다.
오늘 바울은 "축복의 잔"인 성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칸트 Immanuel Kant는 성찬을 "슬픈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는 성찬이 기쁨의 식탁,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들끼리 서로서로 다시 회복된 관계에 대해 기뻐하는 잔치라는 사실을 망각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성찬을 나누는 날은 원래 온 공동체에게 "기쁨의 날"이여야 합니다. 가슴 깊이 하나님과 형제자매들과 화해하며 서로서로 용서하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온공동체가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에 속한 각 지체들은 주님이 마련해 주신 식탁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깨끗케 씻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믿는 공동체의 목표가 있으며, 여기에서 바로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기쁨이 온전해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받아들이는 성찬에 대한 올바른 잣대를 가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10, 44 - 22, 행 8, 9 - 25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284장 찬송 "주 예수 해변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