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고전 5, 12)
"고린도스럽게 산다"는 말은 곧 자제력 없이 비도덕적 그리고 방탕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단지 고린도 시내 뒷골목이나 주점에서 볼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 내부에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아주 정상적인 것처럼, 한 사람이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계모와 살고 있었다. (1절) 물론 고린도 교인들이 마치 도덕을 감시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깥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고 그리스도인들이 범죄자, 사기꾼이나 우상 숭배자로 살아간다면 (11절), 믿는 공동체는 물론 믿는 사람이 빛을 잃고 무력해 질 것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속한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업신여기는 다른 교우들에게 권면하는 대신에, 바깥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과오와 죄를 찾는 일이 훨씬 더 간편함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일에는 냉정한 심판이 아니라, 권면과 도움이 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것들로써 아직 믿음에 있어서 불안정한 형제자매들이 다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자체 내부에 질서가 없이는 세상을 위해 결코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마 7, 3)라고 질문하신 말씀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이러한 잣대로 우리는 배우자, 가족과 친구를 판단하며 이웃과 다른 공동체를 판단하기에 온힘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부정부패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작은 허물을 드러나 보이도록 하면서까지 자기의 모습을 가리고자하는 어리석음까지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는 자, 그것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기에 우리는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에 힘을 기울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4월이 저물고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열립니다. 주위에 동역자들이 바깥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을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중보로 지원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5, 9 - 13, 왕상 3, 5 - 15
배경 찬송은 김소엽 시/ 홍흥산 노래의 "오늘을 위한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