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눅 23, 21)
사도 누가에 따르면, 그 곳에서 그때 소리지른 사람들은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학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바라바를 석방하기를 바랐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도록 결정한 것이다. 백성들 중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많은 무리들 중에 단지 소수만이 나중에 예수님 때문에 슬피 울었다 (27절).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는 외침은 전 기독교 역사에서 유대인을 증오하는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각자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기 때문에, 전 시대를 걸쳐 온 유대인들이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비록 누가복음에서 빌라도가 판결을 내리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십자가형이 로마식 처형방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로마와 유대민족에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이 십자가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바울 사도처럼 우리도 '십자가가 모든 인간들의 죄를 통해 야기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인류는 지난 수세기동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몽매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이마에도 가인의 표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수세기가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형제인 아벨을 우리 스스로 흘린 피 속에 계속 빠지게 했거나,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림으로 야기된 눈물을 아벨이 대신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이런 사건들과 교회사 이면에 흐르는 선하지 못한 길들로부터 되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의 화평만이 우리의 마음과 뜻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 내부 깊이 존재하는 죄성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새로운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23, 13 - 25, 사 26, 20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