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에는 두 여인, 두 어머니 그리고 두 아이가 등장한다. 간밤에 두 아이 중에 하나가 죽어버린 것이다. 슬픈 이야기이다. 아침에 두 어머니 중에 하나가 다른 어머니에게 죽은 아이를 떠넘기고 산아이를 교체했다는 의심으로 가득하게 된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이다.
이 사건이 솔로몬 왕 앞에 송사된다. 솔로몬은 살아있는 아이가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가려야 한다.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살아 있는 아이도 마저 죽여라!" 이것이 솔로몬의 판결이다. "아니되옵니다. 아이를 다른 여인에게 주시더라도, 제발 아이를 살려주십시요!"라고 한 여인이 절규한다. 다른 여인은 "그래요! 아이를 아예 죽여버리십시요!"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솔로몬의 판결은 아이를 죽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어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진실을 가려낸 것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것을 양보하며 사랑하는 아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포기하는 사랑의 진실을 파악한 것이다.
지혜로써 훌륭한 왕들이 항상 연상되지는 않는다. 위대한 권력으로서 승리를 기념하는 전쟁이 가져다 주는 행운으로써 종종 훌륭한 왕이 연상되곤 한다. 하지만 솔로몬 지배아래서는 문화와 학문이 꽃을 피웠다. 지혜로써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허황된 지식이 아니다. 이 지혜는 사랑을 이해하며, 생명을 보존한다. 나아가서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인 것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연구된 인간의 지식을 거의 전부 알고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서관이나 데이타 벵크에 저장된 막대한 지식을 모두 알고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지식은 너무 광범위합니다. 하지만 지혜는 지식과 다른 어떤 것입니다. 지혜는 무엇보다 경험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심오한 지식이나 대단한 은사로부터 우러나온 능력입니다.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서나 자유 속에 다른 사람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해방시키는 지혜가 세상 도처에 있습니다. 이런 지혜는 자유롭게 함으로써 자신과 남이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의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은 "지혜를 버리지 말아라. 그것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여라. 그것이 너를 보호하여 줄 것이다" (잠 4, 6)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고 사랑하여, 삶 가운데에서 "사랑의 지혜"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왕상 3, 16 - 28, 눅 5, 33 - 39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469장 찬송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