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하고 훌륭한 왕이었다. 이제 그는 늙고 허약한 몸으로 병석에 누워 있다. '어떤 길이 미래에 펼쳐질 것인가? 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민족의 운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아도니야는 왕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다윗은 솔로몬이 자신의 후계자가 되도록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에 솔로몬은 자신의 왕위 계승을 궁정의 음모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임으로 결정되고 기름부음을 통해 최종 확인되는 결정에 대해 감사한다. 권력이 막강했던 아도니야의 측근들은 "우리가 엉뚱한 말 위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야만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천 년 뒤에 또 다른 왕의 아들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그는 나사렛 예수이시다. 그는 자신을 대적하는 음모로 인해 희생이 되고,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활시켰고 영원한 왕으로 앉히신다.
한 사건이나 시대가 끝이 나고, 아직 새로운 것이 시작이 되지 않은 인생의 분기점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미래에 어떤 길이 열리게 될 것인가?"라고 질문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에게 푯대를 맞추고 예수님을 확고하게 믿는 가운데 다음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참된 생명길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오늘 묵상에서 솔로몬이 다윗의 대를 이어갈 왕으로 제사장 사독에게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이', 아도니야를 지지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이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에서 이런 "닭 쫓는 개"와 같은 무리들을 흔히들 봅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 앞에 무릎을 꿇은 한국의 기독교가 그 예이며, 히틀러 정권에 기꺼이 봉사한 로마 교황, 독일과 유럽 각국의 기독교가 그 예에 속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교회 종탑 위에 '닭'을 쳐다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쳐다본 사람을 또한 기억합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차가운 형장에서 죽음을 묵묵히 택하셨던 주기철 목사님과 본훼퍼 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이 그 예인 것입니다. 이 두분 목사님이야 말로 땅에서는 물론 하늘에서조차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른 '제자상'인 것입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생명의 길", 참된 안식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택해 나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왕상 1, 28 - 53, 요 12, 34 - 42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507장 찬송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