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사도행전

복음을 전하는 일 - 순교의 길

그리스도의 편지 2009. 1. 3. 00:34

Candle




복음을 전하는 일 - 순교의 길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행 13,  8)

 

  

     기독교 선교의 처음 시작은 성령이 그리스도교를 전하기 위해 세계 선교를 막 시작했을 때, 즉시 반대가 생겨 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그때 바울과 바나바가 보내졌으며, 즉각 이들은 그 저항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예수를 선포하고 동시에 '바예수 Barjesus'에 대적하게 된다.
   이런 일은 오늘날까지도 매한가지다. 한 그리스도인이 아프리카에다 교회와 학교를 세웠는데, 한꺼번에 방화로 인해 모든 것이 불길 속에 휩싸여 버린다. 한 중국인 목사가 예수를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하고 그 이유 때문에 체포되기도 한다. 한 처녀가 수양회에서 믿음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면, 고향의 온 친구들이 이에 대해 비웃게 되고 조롱하면서 그녀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사이프러스 섬에서 경험했던 일은 선교사를 통해서 계속 일관하고 있다. 유대인 거짓 선지가 '엘루마'는 총독인 서기오를 믿음에서 멀리하고 싶어한다.  바울은 엘루마의 맘 속에 '마귀의 자식'을 보게 된다. 그에 맞서서  바울은 보이지 않는 세계 안에서 싸움의 기반을 단지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심한 말을 퍼붓는다. 바울의 말을 통해 엘루마가 즉시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를 목격한 서기오의 맘은 감동을 받게 된다. 

     
    
교회사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졌듯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늘 반대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일은 사도 바울과 다른 선교사들이 항상 거듭해서 경험했던 사실입니다. 어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역사에가 가장 많은 기독교 순교자를 양산한 시대일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순교자'란 단어가 그리스어 'martys', 즉 '증인'이란 뜻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자기의 증언때문에 반대를 경험하고 고난을 스스로 감내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나중에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물론 고난의 길도 기꺼이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사 속에서 바로 순교자의 고난의 순간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예기치 않은 축복도 허락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시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셨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 다는 것을 잊지 않는 새로운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행 13, 1-12,   눅 5, 17-26

 

배경 찬송은 "그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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