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 3-4)
오늘 묵상으로 다룰 단원을 성경에서는 보통 '사울의 회심' 이란 제목을 붙이고 있다. 회심, 그렇지만 무엇을 위한 회심이란 말인가? 그 당시 한 사람이 연약하고 금방 생겨난 교회에 대적하여 미쳐 날뛰었다. 이들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기때문에, 사울은 이들을 멸하고자 했었다. 이 체포 여행 도중에 부활해서 승천하신 예수님에 의해서 사울은 스스로 결단하게 된다. 바리세인인 사울의 마음을 회심하게한 것은 다른 어떤 사도의 설교가 아니었다. 그렇다! 여기서는 바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이 13번째 사도를 부르기 위해 개인적으로 직접 개입하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겪었던 이 경험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고전 15, 8-10) 여기서 바울은 그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달리 나타나신 것과 대등하게 보았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유대 율법학자인 그에게 그리스도 예수가 나타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었다. 이 시점부터 이 은혜의 설교가 바울의 삶의 지침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술사에서 비극의 여인인 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의 동생인 폴 끌로델 Paul Claudel이란 사람의 회심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는 일본과 중국에 외교관으로 오래 있었으며, 프랑스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독실한 신자로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1886년 성탄절에 노테르담 성당에서 있었던 그가 회심한 이야기는 아주 인상 깊습니다. "그때 내 전 생애를 결정짓는 일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나는 감동되었고 믿게 되었다. 그 어떤 의심도 남아있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확신감과 전적인 동의로 믿게 되었다.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여기 계시다. 하나님은 나처럼 똑같이 한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부르신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부름을 듣고 부름에 응하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행 9, 1-9, 삼상 1, 1-11
배경 찬송은 "그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