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초라하게 올 수밖에 없었나요?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 19, 37 -38)
군중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칭송하려면, 주님께서는 항상 그 자리에서 피하셨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도록 내버려 두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 앞에 그들의 옷을 벗어 깔았다.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는 것처럼 존경의 표시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렸던 바로 그 분이며, 모든 고통을 끝낼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권능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화평의 나라를 가져올 자에 대해 예언한 것처럼, 이렇게 "나귀 위에 탄 겸손한 분, 의로운 분이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 (슥 9, 9)으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제자들이 시편 구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시 118, 26)로 경배하면 제자들이 옳다. 이 때 예수를 적대시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게 될 주님이시다"는 환호를 저지하도록 아직 예수님에게 강력히 촉구할 수 있다.
군중들이 "호산나!"하며 환호를 지르는 예수님의 입성 모습을 그려봅니다. 이 중에는 물론 로마 병사들도 '도대체 무슨 야단이 난 것인지' 보러 나왔을 것입니다. 로마군들에게 개선장군의 로마 입성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준수한 말이 끄는 각종 장식을 한 병거에 탄 개선장군, 깃발을 휘날리고 행진곡을 울리며 행진하는 병사들, 각종 전쟁 노획물과 포로로 잡힌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 이것이 바로 로마병사의 눈에는 승리의 입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과 아이들, 갈릴리와 베다니 출신의 농부들로 뒤섞여 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로마 병사는 안장 대신에 윗도리를 걸친 어린 노새의 등에 앉아있는 고독한 한 인물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종려주일에 있었던 환호의 분위기였습니다. 로마군에게는 물론, 예수님을 따르지 않던 등따스고 배부른 예루살렘성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너무나도 초라한 행렬이었습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 마음 속으로 은혜스럽게 지금도 행진해 오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신 왕,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보고 인식하며 고백하는 복된 하루를 열어 젖히시길 .... 샬~~~롬
눅 19, 28 - 40, 눅 14, 25- 35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132장 찬송 "호산나 호산나"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