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같이 되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 11)
바리새인은 경건을 위해서 기꺼이 지불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셨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가당착적인 인간이기때문에 비판하신다. 이들은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스스로 도망치고 구분되고자 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9절) 부류의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의 불행은 스스로 자기 자신들 속에 갇혀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께 고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 스스로 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바리새인은 아주 현대적인 신식인물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완벽함에 의존하는 소위 자수성가한 남여군상들이다.
관계란 홀로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남을 향해 열어젖힐 때만, 우리가 사랑, 선행, 용서, 우정과 관심을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파트너가 필요하며, 사람이나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자신도 같은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열고서 다가갈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아는 성경지식으로 인해 참된 믿음의 눈을 잃어 버리게 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남에게 단순히 보이기 위한 공공연한 연극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반짝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금이 아니듯이,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경건하게 보이고 은혜스럽게 보인다고 해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늘 겸손함 가운데,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 10)는 욥의 고백을 되새기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말씀안에서 단련을 받는 하루, 마침내는 정금같이 되는 앞날을 바라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18, 9 - 17, 마 7, 1 - 6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나의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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